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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부려놓고 가다
천양희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던
시인 허수경 가고
속수무책이 당신이 세운 유일한 대책이라던
시인 황병승 가고
빈빈(彬彬)의 빛그물로 누워 떠내려가고 싶다던
시인 최정례 가고
붉은 황톳물 넘치는 강을 내려다보며
해가 지도록 울었다던
시인 권지숙 가고
별을 향해 걸어갈 내 발자국에는
왜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는지 묻던
시인 배영옥 가고
한 방울 눈물이 평생의 고백이라던
시인 박서영 가고
오, 나도 드디어 못 하나를 얻었다던
시인 김종철 가고
시인을 슬프게 하지 않고 아프게 하던
비평가 황현산 가고
저녁을 부려놓고
나보다 더 그리운 것은 가네*
그리운 것은 가고 나보다
더 많은 저녁만이 남았네
*허수경의 시에서
ㅡ시집『지독히 다행한』(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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