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드 키드 /박성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5. 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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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키드

박성우


카드가 사준 정장을 입고
카드가 사준 구두를 신은 출근길은 벅차다
어쩌다 카드가 사주는 저녁은 근사하고
카드가 큰맘 먹고 들여준 침대는 푹신하다

카드가 현금서비스 해준 축의금을 들고 다녀오는
직장 동료의 결혼식은 처연하게 찬란하다
입사 삼년차 카드 키드,
야근에 지쳐 귀가하는 밤은
카드가 카드론으로 얻어준 원룸이 있어 아늑하다

카드 키드가 되기 위한 지난날은 아름다웠다
스펙에 내준 대학생활은 교양 없이 품위 있었고
자기소개서 속으로 들어간 스펙은 뻔뻔하게 자랑스러웠다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떨어지던 입사시험,
처음으로 면접 통보를 받던 날은
팬파이프 같은 빛이 눈앞으로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카드가 사주는 패스트푸드는 먹을 만하고
카드가 지켜주는 직장생활은 아직 견딜 만하다
정기적금을 해약해 카드에게 이체하고 남은 돈,
지방에 사는 양친께 부쳐드리던 손은 대견하다

월급날 받은 급여는 어김없이 카드에게 옮겨간다
'언제 취직할 거니'를 지나 '언제 결혼할 거니'까지
기적적으로 와 있는 카드 키드, 카드는
희망 복근을 키워보는 건 어떠냐며 헬스클럽을 권유한다



ㅡ 시집『웃는 연습』(창작과비평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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