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봄날의 자전거 /홍계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7. 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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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의 자전거

 

   홍계숙 
 
 
   해묵은 숙제에 싹이 돋네요 
 
   나를 양보하느라 정작 내 시간을 사지 못했던 날들, 깊숙이 감춰둔 용기와 멀어지는 나를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넣어둔 설렘 하나 귀퉁이가 다 닳았어요 
 
   샛노란 두려움을 안장에 태우면 꼭 붙들어 줄 듬직한 손이 필요한데
   때마침 
 
   누군가 부드러운 봄의 시간을 내놓았네요
   당근마켓에
   그것, 내가 살게요 당근인 걸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꿈이 운동장을 끌어당겨요 두 개의 바퀴가 굴러옵니다
 
   비틀대는 꽁무니를 단단히 붙들어주는 당신의 손은 봄처럼 따뜻해요
   햇살이 산수유 꽃대를 세우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 개나리 울타리처럼 타다탁,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을까요 
 
   붙잡은 손 놓은 줄도 모르고
   봄의 바퀴가 한참을 굴러가고 있어요 
 
   꽃들도 빈 가지 위를 두발자전거로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詩』(2021,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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