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적당함의 거리 /김기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7. 24. 18:30
728x90

적당함의 거리

 

김기산

 

 

아무리 떠들고 웃고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질러 봐도 돌아올 때는 혼자다

낯섦이 친구를 찾게 하고

아내를 얻고 살을 맞대도

깨고 나면 누구나 혼자 길에 서 있다

가족도 특별히 친한 타인일 뿐

 

워즈워스의 수선화 찰랑이는 호수

황홀한 빛에 발을 들여놓으면

늪이 되고 만다

삶은 얽매이는 것 아니다

지극한 사이기에 자신을 내어주면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인생의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하늘의 별들이 각각이고

대숲의 댓잎들 서로 붙어있지 않듯이

바람소리 그대로 성글성글 지나가게 하라

누구나 붙어있을 때 상처받기 쉽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언제나 혼자임을 가슴에 종기처럼 안고 가라

 

 

 

―시집『사람이라서 미안하다』(도서출판 한터, 2021)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목 /안태현  (0) 2021.07.24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김기산  (0) 2021.07.24
그믐달 /정진호  (0) 2021.07.23
칸나가 피는 오후 /이이화  (0) 2021.07.23
뷰 포인트 /이현승  (0) 202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