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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함의 거리
김기산
아무리 떠들고 웃고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질러 봐도 돌아올 때는 혼자다
낯섦이 친구를 찾게 하고
아내를 얻고 살을 맞대도
깨고 나면 누구나 혼자 길에 서 있다
가족도 특별히 친한 타인일 뿐
워즈워스의 수선화 찰랑이는 호수
황홀한 빛에 발을 들여놓으면
늪이 되고 만다
삶은 얽매이는 것 아니다
지극한 사이기에 자신을 내어주면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인생의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하늘의 별들이 각각이고
대숲의 댓잎들 서로 붙어있지 않듯이
바람소리 그대로 성글성글 지나가게 하라
누구나 붙어있을 때 상처받기 쉽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언제나 혼자임을 가슴에 종기처럼 안고 가라
―시집『사람이라서 미안하다』(도서출판 한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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