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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모티브
강성은
눈을 마중 나온 사람이 있다
눈과 사람은 설익은 감정을 마주한다
몸을 앉히고, 얼굴을 얹고
손과 발을 묶으면
겨울은 병렬방식으로 직립한다
바람의 옆구리에 화살을 꽂자 지느러미가 돋는다
안으로 부는 바람은
바깥을 응시하는 눈빛과 마주할 수 없어
허공의 시린 등에 얼굴을 묻고 운다
촉촉이 젖은 입술로
당신의 이름을 불러낼 때
고독이
고드름의 형상으로 번식하는 종족
白에서 百까지 다 세기도 전에
체열이 너무 높아 싸늘해지는 몸의 내피를 숨긴다
눈동자가 눈 위에서 급커브를 돈다
커브의 각도에 꺾여 굽이치는 언덕
그 아래로
나무들의 붉은 기침이 구르고
제 무게의 8할을 그늘 속에 넣어두고
겨울의 모티브가 된 눈사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호모에렉투스의 후손일까
이미 죽은 몸
오랜 잠을 통과한 둥근 무덤이
하늘과 땅의 경계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에 젖고 있다
―시집『白백에서 百백까지의 고백』(시산맥,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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