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겨울의 모티브 /강성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8. 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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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모티브

 

강성은

 

 

​눈을 마중 나온 사람이 있다

눈과 사람은 설익은 감정을 마주한다

 

​몸을 앉히고, 얼굴을 얹고

손과 발을 묶으면

겨울은 병렬방식으로 직립한다

 

바람의 옆구리에 화살을 꽂자 지느러미가 돋는다

 

​안으로 부는 바람은

바깥을 응시하는 눈빛과 마주할 수 없어

허공의 시린 등에 얼굴을 묻고 운다

 

​촉촉이 젖은 입술로

당신의 이름을 불러낼 때

고독이

고드름의 형상으로 번식하는 종족

 

​白에서 百까지 다 세기도 전에

체열이 너무 높아 싸늘해지는 몸의 내피를 숨긴다

 

​눈동자가 눈 위에서 급커브를 돈다

커브의 각도에 꺾여 굽이치는 언덕

그 아래로

나무들의 붉은 기침이 구르고

 

​제 무게의 8할을 그늘 속에 넣어두고

겨울의 모티브가 된 눈사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호모에렉투스의 후손일까

 

​이미 죽은 몸

오랜 잠을 통과한 둥근 무덤이

하늘과 땅의 경계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에 젖고 있다

 

 

 

―시집『白백에서 百백까지의 고백』(시산맥,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