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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허연
지하5층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그렇게 시를 지킨다 우리 나이엔 근육량을 늘려야 한다느니 저금리 시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느니 이번 인사가 어땠고 누구 줄을 타야 한다느니……
이런 소식에서 멀어지기 위해
나를 소식에서 떼어놓기 위해 나는 오늘도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넷이 앉는 자리에서도 여섯이 앉는 자리에서도 나는 늘 혼자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내가 어느 날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소식이 소화되지 않는 불내성증에 걸린 것이다
내려놓은 젓가락과 식탁의 끝선을 애써 맞추며
뿌래채소와 카레라이스를 씹는다
구내식당 벽에는 교과서에 실린 달달한 디저트 같은
시들이 걸려 있고 나는 마츠 에크의 대머리 백조처럼
오늘도 혼자 밥을 먹으며 외롭고 슬픈 주문을 외운다
―시집『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문학과지성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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