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어디선가 네가 이 순간을 / 오정국(吳廷國)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8. 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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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네가 이 순간을

 

오정국(吳廷國)

 

 

어디선가 네가 이 순간을 본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춤은 없었다고 말할 거야 내 몸 어디에서 이런 춤이 나온 건지 알 수 없어

 

이 얼굴로 내가 시작되는 게 아니고

이 발걸음으로 내가 멈춰서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

 

이 춤은 차갑고 무서워

북극 빙하에서 꺼내온 눈보라 같고

새의 심장에서 건져온 날개 같아

네가 그 까닭을 말해주길 바라는데

 

어둑한 숲에서 자작나무 흰 빛이 새어나오고, 강바닥의 물살이 자꾸만 교각에 되감겨 오네 너는 멀리서 아득하게 살아 있어서

 

내 몸이 껴입는 풍경들

월요일의 장미가 꽃피고

수요일의 가로수가 밀려오고

금요일의 묘지가 불타고 있어

 

언제 어디서든 단 한 번의 춤이야, 그러니까 장미의 입술을 너에게 보내고, 구름과 바람과 태양의 날씨를 여기에 담는 거야, 택배 잘 받아

 

 

 

시집재의 얼굴로 지나가다(민음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