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싱싱한 죽음 /김희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8. 18. 07:54
728x90

  싱싱한 죽음

 

  김희준

 

 

  편의점에는 가공된 죽음이 진열돼 있다

 

  그러므로 꼬리뼈가 간지럽다면 인체신비전 같은 상품을 사야 한다 자유를 감금당한 참치든 통으로 박제된 과육이든

 

  인스턴트를 먹고 유통기한이 가까운 상상을 한다 여자를 빌려와 글을 쓰고 사상을 팔아 내일을 외상한다 통조림에는 뇌 없는 참치가 헤엄쳤으나

 

  자유는 뼈가 없다

 

  냉장고를 여니 각기 다른 배경이 담겨 있다 골목과 심해 다른 말로 배수구, 그리고 과수원 세 번째 칸에는 누군가 쓰다버린 단어가 절단된 감정으로 엎어져 있다 빌어먹을 허물

 

  싱싱하게 죽어있는 편의점에는 이름만 바꿔 찍어내는 상품이 가지런하고

 

  형편없는 문장을 구매했다 영수증에는 문단의 역사가 얼마의 값으로 찍혀있다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문학동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