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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죽음
김희준
편의점에는 가공된 죽음이 진열돼 있다
그러므로 꼬리뼈가 간지럽다면 인체신비전 같은 상품을 사야 한다 자유를 감금당한 참치든 통으로 박제된 과육이든
인스턴트를 먹고 유통기한이 가까운 상상을 한다 여자를 빌려와 글을 쓰고 사상을 팔아 내일을 외상한다 통조림에는 뇌 없는 참치가 헤엄쳤으나
자유는 뼈가 없다
냉장고를 여니 각기 다른 배경이 담겨 있다 골목과 심해 다른 말로 배수구, 그리고 과수원 세 번째 칸에는 누군가 쓰다버린 단어가 절단된 감정으로 엎어져 있다 빌어먹을 허물
싱싱하게 죽어있는 편의점에는 이름만 바꿔 찍어내는 상품이 가지런하고
형편없는 문장을 구매했다 영수증에는 문단의 역사가 얼마의 값으로 찍혀있다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문학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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