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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과 뻘이란 관계의 도식
강희안
어느 날, 한 평론가 선배가
술에 잔뜩 취해서
내가 너한테는 뿔이냐 뻘이냐고 물었다
나는 뿔이라 할까 고민하다가
뻘이라 대답했다
뿔은 상대를 치받는 나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그 선배가 뻘이 되어야 내가 뿔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어느 날은 한 고전소설을 전공한 후배가
술에 더 잔뜩 취해서는
나에게 자꾸 빨려 들어간다고 문자가 왔다
나는 나도 그렇다고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뻘이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나는 당구에서도 끌어내는 일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배의 뿔이자 후배의 뻘로 남고 싶기 때문이었다
―시집『너트의 블랙홀』(포지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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