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뿔과 뻘이란 관계의 도식 /강희안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9. 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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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과 뻘이란 관계의 도식

 

강희안

 

 

어느 날, 한 평론가 선배가

술에 잔뜩 취해서

내가 너한테는 뿔이냐 뻘이냐고 물었다

 

나는 뿔이라 할까 고민하다가

뻘이라 대답했다

뿔은 상대를 치받는 나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그 선배가 뻘이 되어야 내가 뿔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어느 날은 한 고전소설을 전공한 후배가

술에 더 잔뜩 취해서는

나에게 자꾸 빨려 들어간다고 문자가 왔다

 

나는 나도 그렇다고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뻘이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나는 당구에서도 끌어내는 일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배의 뿔이자 후배의 뻘로 남고 싶기 때문이었다

 

 

 

―시집『너트의 블랙홀』(포지션.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