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시인의 제국 /배익화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0. 2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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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제국

  배익화​

 

  시인은 감각의 제국을 가졌다.

  시인은 망상의 제국을 가졌다.

  시인은 분열증의 제국을 가졌다.

  시인은 마침내 제국의 통치자로 인정되어 종합병원 폐쇄병동에

수감되었다.

  종합병원 페쇄병동은 제국의 통치자를 통치하는 제국이었다.

  통치자를 통치하는 병원의 알약은 제국의 감각을, 망상을, 분열증을

  다스렸다.

  마침내 시인이 퇴원하는 날,

  친구도 떠나고 사랑도 떠나갔다.

  스승도 떠나고 이웃집 다정한 눈빛도 떠나갔다.

  아니 세상의 모든 관심과 배려가 떠나갔다.

  시인의 유일한 벗은 배고픔과 감각과 망상과 분열증만 남아

  서러운 지상과 천국을 논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시인과 같이 밥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시인은 언제나 혼자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익숙해졌다.

  시인은 감각과 망상과 분열증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광할한 초원위에서 말을 달릴까.

  검푸른 바다위에서 말을 달릴까.

  아니면 구름 위에 왕국을 짓고 사막의 전차를 몰고 다닐까.

  시인은 생각했다.

  세상에 배고픔과 사랑, 전쟁과 탐욕이 없다면

  세상사는 맛이 날까.

  아니 세상을 사는 재미가 있을까.

 

  시인은

  제국의 통치자 답게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세상이 너를 버렸다고 생각하지마라. 세상은 너를 한번도 가진적이 없으니*,

  한번은 희극처럼, 또 한번은 비극처럼

  시인은 감각을, 망상을, 분열증을 사랑했다.

  무엇보다도 그 어느곳이라도 망상하고 갈 수 있는 시인의 제국을 사랑했다.

  시인은 어린아이같이 악동처럼 중얼거렸다.

  너희가 나같이 망상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의 문을 두드릴 수 없을지니,*

  시인은 마지막으로

  제국의 통치자 답게 근엄하게 중얼거렸다.

  한번은 희극처럼, 또 한번은 비극처럼

  제국이 너를 버렸다고 생각하지마라. 제국은 너를 한번도 가진적이 없으니, 

 

 

* 롬멜의 잠언을 인용

* 마태복음18:1-3을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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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시인광장』(201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