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브로콜리
강미영
어느 쪽을 잘라도 나의 분신은 살아있었다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나의 모습 안에 또 다른 내가 끊임없이 탄생했다
팔 다리는 지워지고 모난 부분 없는 머리통만 가지고 나무들을 임신했다
생의 끝을 아는 듯 너무 많은 길을 걸었다
끝도 없는 노래가 마르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세상에 없는 푸른 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의 분신들은 누군가 와서 구두를 신지 않는 발목을 베어주기만 기다렸다
유일한 문장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비가 내리고
핏물이 흐르지 않도록 저녁밥을 지었다
낡고 긴 생활이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여러 번 헹구어졌다
―계간『시와 사상』(2021년 여름호)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전히 그 잔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 /하상만 (0) | 2021.11.10 |
---|---|
사랑, 지난날들의 미몽 /이령 (0) | 2021.11.10 |
고독의 한쪽 /권혁재 (0) | 2021.11.10 |
도장을 팠다 /정홍순 (0) | 2021.11.09 |
입만 슬프다 /정홍순 (0) | 2021.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