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단풍 지는 계절에 서어나무가 되어 /조향옥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2. 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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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지는 계절에 서어나무가 되어

 

조향옥

 

 

그때처럼 벗고 있네요

단정한 목덜미 서 있네요

 

처음 돋는 것들은 아팠어요

빨간 잎눈으로 터졌어요

온몸 구석구석 건드리지 않아도 터졌어요

숨기고 싶은 것 잎사귀 밑에 감추었어요

 

청량산 서어나무를 보세요

청춘을 겉옷처럼 벗어들고 단풍 속으로 걸어가네요

이름표 단 젊음이 사열하듯 서 있네요

 

나는 구름이 되기로 하여요

빗물이 되기로 하여요

다시 구름이 되기로 하여요

굵은 허벅지 건강한 팔다리

나는 비가 되어 한 백년 너의 몸 씻어 주었느니

 

저기를 보세요

물들어 붉고 노란 것들

어찌하지 못하는 자신을 붙들고 비탈져 울고 있네요 떨

어지고 있네요

그 모자, 그 목덜미, 그 옷, 그 빗물, 그 단풍

이제 나는 서어나무가 되겠어요

 

통증 붉은 잎눈을 기억하는 나무

건강한 팔다리 기억하는 나무

나는 그런 나무가 되어 한오백년 살아야겠어요

당신은 비가 되어 벗은 내 몸 씻어 주어요

천번 만번 키스해 주어요

나 지금 여기 있어요

 

 

 

―시집『남강의 시간』(애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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