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흙, 봄날 파생어를 뿌리다 /이명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2. 1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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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 봄날 파생어를 뿌리다

 

  이명희

 

 

  나는 모든 만물 품어 길러 주는 주어이지요 훈풍이 접두사로 날갯짓하면 씨앗 싹틔워 파릇파릇 봄을 펼치지요 그러면 종달새는 동사처럼 오르락내리락 언덕을 날아다니며 봄노래를 불러요 울긋불긋 꽃을 피워 환히 밝힌 형용사 동산에 벌 나비가 앵두꽃 사과꽃 배꽃에 조사처럼 매달려요

 

  접속사 태양이 지상에 따스한 볕을 비추면 아기 열매들이 주렁주렁 보조어간으로 매달리지요 농부들의 바쁜 일손 다독여 채소에 부호를 달아줘요 접미사 봄비 아가씨 촉촉이 내리네요 수다쟁이 부사 아줌마 자랑할 꽃도 많지만, 봄꽃이 제일 예쁘다며 어깨 들썩거리지요 야생꿩 뻐꾹새 꾀꼴새 동박새 소리 흉내 내며 노래로 각주를 달아요

 

  나는 하나님도 깜짝 놀라는 소출을 올리지요 하늘을 품었고 내 몸 안에는 파란 부리들이 살고 있어 새록새록 말의 씨를 물고 돋아나요 이 봄날, 아기자기한 언어들이 내 배꼽에서 날아올라요

 

 

 

―『모던포엠』(2022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