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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려온 배추흰나비와 딸려갈 데가 없는 동전 바구니
신향순
배추흰나비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태어났어
텃밭 무 이파리를 갉아먹다가 꼼짝없이 딸려왔지
밤새 낡은 옷을 벗고 허공을 움켜쥐고 눈부시게 날아올랐지
어둠의 침묵을 깨고 나온 베란다를 그의 집이라 불러야 할지
어미가 날아오른 하늘
아니면, 고요의 침묵으로
달의 시간을 짓던 텃밭을 그의 본향이라 불러야 할까
처음 발바닥 디딘 세상에서 멀어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거기가 어미의 자궁인 양
타일 바닥을 꽉 움켜잡고 있어
전철역 계단 가운데쯤 허기진 빨간 바구니
어쩌다 쨍그렁 소리 내며 온기 한 줌 날아들면
움츠린 목이 길어지지
그는 어떤 달콤한 유혹에 빠져 허물만 남았을까
도시의 차디찬 계단에 엎드려
말캉말캉 서리 맞으며 농익어가는
고향집 뜨락 곶감 하나 가슴에 매달고 있을까
어디에도 딸려갈 수조차 없는
그는 오래전 계단에 딸린 식구가 되어버렸지
―『모던포엠』(2022,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