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집으로 가는 길
홍해리
어쩌다 실수로 아내의 치매약을 먹었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
하염없이 거리를 헤맸습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걸어다니는 일도
차를 타는 것도 다 잊은 상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허우적허우적거리다
때로는 허공을 날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길을 잃고 헤맨 아내
그 뒤를 쫓아다녔는지도 모릅니다
여덟 시간 미아가 되었던 아내의 긴 세월을
하룻밤 꿈으로 대신했나 봅니다
아내의 치매약으로
다른 한세상을 구경한 내가
약도 없는 치매환자가 되어
환한 대낮에 길을 잃고 허청댑니다.
―시집 『마음이 지워지다』(놀북, 2022)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장風葬 /진영대 (0) | 2022.05.19 |
---|---|
알 /진영대 (0) | 2022.05.19 |
사람의 마을 /권서각 (0) | 2022.05.18 |
민들레의 비행 /최연수 (0) | 2022.05.18 |
문득, 나비 /최연수 (0) | 2022.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