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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혼잣말
이문재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호스피스와 산파가 동시에 필요한 시기
잘 배웅하고 또 잘 마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학교에서는 성찰하고 표현하라고 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활동가들이 시장통을 지나 광장에서 모이자고 합니다
혼자는 혼자의 안팎을 살펴봅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희미합니다 잘 안 보입니다
누가 무엇이 왜 혼자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제는 화조차 나지 않습니다 절망하기에도
무력해지거나 우울해지기에도 힘이 듭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감정이 고장 나고 말았습니다
혼자 근처에는 혼자와 다를 바 없는 혼자들뿐
어쩌면 낡은 것은 가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떠나간 척하면서 안안팎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새것은 이미 지나갔는지도 모릅니다
오래된 미래는 오래된 책 속에만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들이 낡은 것과 새것 부분과 전체 사이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 이른바 도래했다는 인류세의 문턱에서
배웅하지도 못하고 마중을 나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혼자 안에도 혼자들이 혼자 밖에도 혼자들이
제자리에서 서성거리는 이상한 환절기입니다
우리 혼자는 끝이 시작되었다고 혼잣말을 합니다
끝이 시작되었다고 조만간 끝나고야 말 것 같은
마지막 끝이 시작되었다고
ㅡ계간『문학동네』(2021, 거울호)
ㅡ<2022 제20회 유심작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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