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불을 갈며
홍신선
컨테이너 간이함바집 뒤 공터에서
연소 막 끝난 헌 연탄재 치석 떼듯 떼어버리고
윗 것 밑으로 내려놓고
십구공탄 새 것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하나하나 생식기 맞춰 넣고 아궁이 불문 열어두면
머지않아
자웅이체가 서로 받아주고 스며들어
한통속으로 엉겨 붙듯
연탄 두 장 골격으로 활활 타오르리라
둥근 몸피 속속들이 푸른 불길 기어 나와
단세포 목숨처럼 탄구멍마다 솟구치리라 꿈틀대리라
왜 통합이고 통일인가
연탄불 신새벽녘 갈아보면 모처럼 너희도 안다
후끈후끈 단 무솥 안에서
더 요란스럽게 끓어 넘치는
뭇 사설의 뒷모습들.
<「미네르바 2008 봄 통권 29호」>
연탄불 갈아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십대는 연탄이 뭔지도 모르고 20대는 보기만 했을 것이고 삼십대는 한번쯤 갈아보았을라나요. 사십대는 갈아본 사람과 안 갈아본 사람이 섞여있을 것이고 오십이 넘어선 사람들은 꺼진 연탄불 번개탄으로 피워본 적이 많을 것이고 연탄불 꺼뜨릴새라 한겨울 밤 깊은 잠 들지 못하고 자다가 깨고 자다가 깨서 신새벽에 연탄불 갈아본 경험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연탄을 시간 맞게 갈면은 두 장이 쉽게 떨어지지만 볼일을 보러 나가거나 일찍 잠자리에 들고싶어 조금 미리 갈려고 하면 두 덩이 딱 붙어서 집게로 내려쳐야하는데 잘못내려쳐서 윗불의 반이 떨어져나가는 낭패를 당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그런 고생보다도 연탄가스 중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한번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도 많아 그런 아픈 체험이 시나 소설로 창작이 되곤 하였지요.
며칠전에 100달러 미만으로 떨어지기는 했어도 기름값이 하도 많이 치솟아 닫은 광산을 다시 열고 난방을 위해 연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연탄이 기름이나 가스를 밀어내고 다시 취사와 난방을 차지하는 일은 없겠지만 연탄에 대한 추억은 고스란히 사·오십대 이상의 몫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상상력을 펼친 시가 공감을 형성한다고 하면 20대의 시인이 연탄을 소재로 한 시는 공허한 상상력의 산물이겠지요.
인터넷에서 이재무 시인의 시 창작 강의을 청강했는데 거기서 보면 공광규 시인은 "소주병"에서 아버지를, 서정주 시인은 국화에서 40대 여인의 원숙미를 발견합니다. 이재무 시인은 자기의 시를 예제로 들어가며 설명을 많이하는데 감자꽃에서는 애 못낳는 여자(석녀)를, 저수지에서는 수심 깊은 여자를 발견하고 냉장고에서도 마찬가지로 늙은 여자로 보고 있는데 누가 먼저 쓴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표현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오래된 냉장고를 늙은 어머니에 비유한 시도 있더군요.
어쨌든 이 시는 이재무 시인의 표현을 빌면 활활 타오르는 연탄불에서 통합을, 사유를 확장해서 통일까지를 보고 있습니다. 좋은 시는 이렇게 발견의 미학이 들어 있는 시가 좋은 시라고 합니다. 물론 시를 선호하는 취향이나 쓰는 방법이 각양각색이겠으나 좋은 시를 쓰고 싶어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가 좋은 참고가 되고 길라잡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네르바 2008 봄 통권 29호」에는 홍신선 시인의 원고지로 쓴 육필시 "사람이 사람에게" 실려 있는데 이 시도 참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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