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팬티와 빤쓰 / 손현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3. 2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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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와 빤쓰 / 손현숙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쓰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

집구석용 푸르댕댕 빤쓰는 벗어버리고
레이스팬티로 갈아입어야 한다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 두 다리에 살살 끼우면
약간 마음이 간지럽고 살이 나풀댄다
나는 다시 우아하고 예쁜 레이스공주

밖에서 느닷없이 교통사고라도 당한다면
세상에, 땡땡이 빤쓰인 채로 공개되면 어쩌나
비싼 쎄콤장치로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듯
유명 라펠라 팬티로 단단한 무장을 한다

오늘 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혹시라도 치마가 팔랑, 뒤집힌다면
나 죽어도 꽃무늬 레이스로 들키고 싶다


-『애지』2007년 여름호<반경환 명시감상 1>



팬티와 빤쓰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영어와 일본어 차이. 아니면 외국 물먹고 온 사람이 쓰는 세련된 말과 나이든 노인들이 쓰는 촌스러운 말. 전자시대에 걸맞게 지하철도 버스도 현금내고 타는 사람이 별로 없고 모두들 카드를 이용하는 시대인데 말이란 시대에 따라 생성하고 화려하게 영화를 누리다가 어느 날 제 임무를 다하면 슬며시 소멸을 합니다.

한창 우리말로 이름을 짓는 것이 유행일 때 토큰이라는 언어가 탄생을 했습니다. 엄격히 따지면 탄생을 한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가져온 것이지만. 종이로 된 버스표를 동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적당한 우리말을 찾지못해 논란이 되다가 신문과 티브에서 사용하니 고착된 말이었는데 시대의 변천에 토큰이라는 말도 제 운명을 다하고 사라지고 말았지요.

지금은 일본말의 잔재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그런데 여전히 우리말을 비하 하고 천시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남아있는 말들이 남아있지요. 가령 예를 들어본다면 영어의 '누드' 하면 고상하게 들리고 '나체' 하면 점잖은 말, 그런데 '알몸' 하면 그 말을 쓰는 사람이 마치 품위가 훼손이나 되는 것처럼 쓰기를 꺼립니다.

알몸뿐 아니라 우유라는 말도 있지요. 이 우유라는 말은 일본에서 만든 한자말인데 일본 발음으로 '규우뉴우' 라고 읽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한국식 한자소리로 읽혀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우유는 영어의 밀크라는 말을 밀어내고 우위를 점령하여 거의 우리말로 정착되다시피한 말인데 이 우유라는 말을 우리말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소젖, 소젖이 되겠지요. 그런데 사람이 사람젖 - 이것도 모유라고 말하면 품위가 있어보이고 더 지식인처럼 인식이 되지만 -을 먹지않고 우유를 먹어야하는데 소젖을 먹는다고 하니까 왠지 거부감이 느껴지지도 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사실 우유牛乳라는 한자말도 풀어서 쓰면 소젖인데 소젖을 소젖이라고 하는데 왜 비하 하는 것처럼 느꺼질까요. 원래 길이 없는 곳에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되듯이 처음가는 길이 낯설 듯 말이란 처음에 조금 부자연스럽다 하더라도 '소젖' 이라는 순우리말을 여러 사람들이 자주쓰고 많이 쓰면 자연스러워지고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시의 내용이야 외면의 모습과 상반된 내면의 인간모순적인 모습을 아이러니에 아이러니한 것이지만 속에야 어떤 것을 입든 겉만 보는 속물들이 속까지 들여다 볼 줄 알기나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팬티는 외출하는데 입는 화려한 속옷(난벌)이고 빤쓰는 집에서나 입는 허접한 속옷(든벌)이라는 개념이 잘 맞아 떨어져 보입니다.

<정호순>

 



 바람부는 세상 /김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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