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소스라치다 / 함민복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3. 25.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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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라치다 /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애지』2004년 가을호


사람들이 뱀을 왜 두려워하고 싫어할까요. 첫째는 독이 있다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모습이 그다지 아름다워보이지 않기 때문일테지요. 뱀은 냉혈동물이라 기온이 떨어지면 동작이 둔해지고 땅꾼들이 그걸 이용하여 이른 아침에 뱀을 잡으러 나선다고 하는데 만지면 서늘한 촉감이 오짝 공포감으로 다가 와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뱀에 대한 좋지 않는 이미지는 창세기에 나오는, 이브를 유혹하여 금담의 열매를 먹게한 것도 한몫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뱀 싫어하는 사람이 독 없는 뱀이라고 해서 뱀을 좋아하지 않듯이 생김새나 감촉에 관한 것도 편견이고 선입견이 될 수도 있겠지요. 개를 좋아하지 않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졸졸 따라붙어 성가시게 하거나 귀찮게 하지 않고 도도하면서도 고상하게 위엄과 품위를 지키는 것이 매력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뱀을 애완용으로 집에서 기르고 뱀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은 차갑고 매끄러운 피부가 오히려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보통 뱀을 만나면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가풀막을 오르다 바위에 앉아 잠시 쉬어가려고 하는데 옆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혀를 날름거리고 있으면 소스라치게 안 놀 사람이 어디 있겠는지요. 하지만 어디 놀라는 것이 사람만이겠습니까. 체온을 올리려고 햇볕을 쪼이며 오수를 즐기고 있는데 느닷없이 사람이 나타나서 방해를 하니 뱀 역시도 소스라치게 놀랐겠지요.

밤길을 가다가 다른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게 제일 무섭다고 하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지 못하니 불신이 쌓이고 불신은 선입견을 낳고 경계를 만들어 멀어지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쓸만한 목재다 싶으면 베어가고 좋은 바위면 자기 집 정원에 갖다 놓고 싶어하고 하늘도 연무가 끼면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시를 쓸 때 발상의 전환을 하고 사물을 볼 때 거꾸로보기 뒤집어보기를 하라고 합니다. 함민복의 시 '소스라치다' 가 그 본보기의 한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 나아가 낯선 것끼리 마주칠 때 지상의 모든 생명들과 무생명들까지도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하니 세상에 사람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어디 있겠는지요. <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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