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 감태준
바람에 몇 번 뒤집힌 새는
바람 밑에서 놀고
겨울이 오고
겨울 뒤에서 더 큰 겨울이 오고 있었다
“한번……”
우리 사는 바닷가 둥지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고향을 바꿔 보자”
내가 아직 모르는 길 앞에서는
달려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때,
아버지는 바람에 묻혀
날로 조그맣게 멀어져 가고,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는 온몸에 날개를 달고
날개 끝에 무거운 이별을 달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환한 달빛 속
첫눈이 와서 하얗게 누워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내 마음의 한가운데
아직 누구도 날아가지 않은 하늘을 가로질러
우리는 어느새
먹물 속을 날고 있었다.
“조심해라, 얘야”
앞에 가던 아버지가 먼저 발을 헛딛었다
발 헛딛은 자리,
서울이었다
(「마음이 불어가는 쪽」, 현대문학사, 1987)
-문학과 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언젠가 케1티브 환경스페설을 보았더니 같은 조건속에 둥지를 트는 쇠닭이 덩치가 큰 물닭에게 둥지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 쫓겨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닭이든 쇠닭이든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애쓰는 것은 천적으로부터의 보호와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 새끼를 안전하게 끝까지 잘 키워내기 위해서입니다.
철새 또한 먹이와 새끼를 위해서 수천리 길을 날아가는데 발을 헛딛은 곳이 그만 서울이었습니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내려 앉아도 서울이라는 거대한 정글에서 적당한 곳을 찾아 둥지 틀기가 만만치 않았을터인데 그만 발을 헛딛었으니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겠지요. 약육강식이라는 적자생존이 정글의 법칙이라고 하지만 햇볕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키작은 나무들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 없이 도시의 철새들은 이곳 저곳으로 이동을 해야만 합니다. 이것 저것 다 뿌리치고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도 예전의 그 고향이 아닙니다. 좀 더 먹이가 풍부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찾아 둥지를 이동하면 좋으련만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 생존경쟁에 밀려 이동하는 철새들은 새 둥지를 찾아서 고달픈 날개짓을 해야겠지요. <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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