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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16> 김영남 '푸른 밤의 여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4. 3.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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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16> 김영남 '푸른 밤의 여로'
만조의 밤안개, 코스모스와 함께
푸른 밤 마량 옥색바다로의 여로
그곳서 잊혀졌던 고향의 끈을 잡다
  •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심사현장. 문학평론가 유종호씨가 신경림 시인을 앞에 두고 김영남의 깔끔한 시 ‘정동진역’을 상찬했다.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는 풍경,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 바닷바람에 철로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고 응모자는 썼다. 

    ◇김선두 화백이 그린 김영남의 시 ‘푸른 밤의 여로’. 강진읍에서 칠량을 거쳐 마량항까지 가는, 만조의 바다를 옆에 낀 황홀한 여로가 푸르게 덧칠된 그림이다.
    당선 연락을 했을 때 그는 당선작이 어떤 시냐고 물었다. 통상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할 때는 최소한 3편 이상의 시를 보내야 하는데, 응모자에 따라선 수십 편을 보내는 이도 있다. 팁을 주자면,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수준이 고른 최소한의 응모작을 보내는 게 낫다. 그중 한 편이 뛰어나도 다른 시들이 떨어지면 심사자는 고민하게 마련이다. 김영남은 당선작 ‘정동진역’이 그냥 첨부한 시였을 뿐이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그 시는 단아하고 진솔했으며, 쓸쓸하고 아름다웠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들은 지방지까지 합하면 한 해만도 10여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모두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문인으로 살아남는 예는 많지 않다. 김영남은 그 집단에서 빛났다. 첫 시집 ‘정동진역’(민음사)은 베스트셀러 시집으로 각광받았고, 두 번째 시집 ‘모슬포 사랑’(문학동네)은 많은 가슴을 적시었다. 세 번째 시집 ‘푸른 밤의 여로’(문학과지성사)에 이르러 그는 주춤, 고향의 의미와 인생을 다시 되새기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몇 개의 상도 받았고, 정동진에서 제주 모슬포까지 시로 떠돌았다.

    “오래도록 그리워할 이별 있다면/ 모슬포 같은 서글픈 이름으로 간직하리./ 떠날 때 슬퍼지는 제주도의 작은 포구, 모슬포./ 모-스-을 하고 뱃고동처럼 길게 발음하면/ 자꾸만 몹쓸 여자란 말이 떠오르고,/ 비 내리는 모슬포 가을밤도 생각이 나겠네.// 그러나 다시 만나 사랑할 게 있다면/ 나는 여자를 만나는 대신/ 모슬포 풍경을 만나 오래도록 사랑하겠네./ 사랑의 끝이란 아득한 낭떠러지를 가져오고/ 저렇게 숭숭 뚫린 구멍이 가슴에 생긴다는 걸/ 여기 방목하는 조랑말처럼 고개 끄덕이며 살겠네./ 살면서, 떠나간 여잘 그리워하는 건/ 마라도 같은 섬 하나 아프게 거느리게 된다는 걸/ 온몸 뒤집는 저 파도처럼 넓고 깊게 깨달으며/ 늙어가겠네. 창 밖의 비바람과 함께할 사람 없어/ 더욱 서글퍼지는 이 모슬포의 작은 찻집, ‘경(景)’에서.”(‘모슬포에서’)

    ◇강진 마량 바다에 해가 지고 있다. 김영남 시인은 “에구머니나, 분홍 풍선이란, 잠자던 것들까지 깨워 띄우는 신기한 기구, 허름한 유리창에선 더욱 높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 찬바람 불면 더욱 슬프게 펄럭이는 어선의 깃발, 난 그 풍선을 잡고 먼 나라로 가고 싶다”고 저 분홍 빛깔에 대해 시에서 썼다.
    저리 구구절절 이별의 아픔에 대해 늘어놓는 일은 청승맞다. 그래도 이런 대목, “살면서, 떠나간 여잘 그리워하는 건/ 마라도 같은 섬 하나 아프게 거느리게 된다는 걸/ 온몸 뒤집는 저 파도처럼 넓고 깊게 깨달으며/ 늙어가겠네” 같은 구절은 꽤 아프다. 그이가 오래 타지를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방의 고향을 읊어도 환영하지 않았고, 그러기는커녕 뜨악한 눈빛으로 오히려 배척하는 분위기였다. 후일 그는 이렇게 모든 고향에 대해 성찰했다.

    -고향은 우리가 동구 밖을 뒤로하고 버스에 오르는 순간 외면하기 시작한다. 이웃 ‘숙’이도 먼 곳으로 떠나게 하고, 그녀의 동생은 물에 빠져 죽게 하고, 그 집은 태풍에 허물어지게 하고, 뒤란의 앵두가 익어 수습하고자 아무리 애써도 이를 알려주지 않는다. 발까지 꽁꽁 묶어놓는다. 어쩌다가 들르게 되면 험한 얼굴의 개들만 따라다니며 우리가 마치 수상한 이방인인 것처럼 사납게 짖어온다.(‘푸른 밤의 여로’ 시인의 자서)

    ‘정동진역’이 시로 각광받아도, ‘모슬포’가 다시 시로 의미를 부여받아도 정작 그 지역 주민이나 특히 문인들이 행복했던 건 아니었다. 김영남 시인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타 지역 사람이 자신의 고향을 불쑥 상찬한다고 해서 그게 진정한 사랑으로 다가오진 않는다는 거다. 입장을 바꿔 놓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그는 이해했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김선두 화백, 지금은 작고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 그리고 김영남 시인이 함께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고향에 내려가 이청준의 각 지역에 대한 소회와 설화를 들으며 배회했던 건 김영남 시인에게 고향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시인의 시와 소설가의 산문, 화가의 그림이 어울린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라는 책도 2004년 펴냈다. 강진읍 고속버스터미널에 밤 아홉시 넘어서 내려, 칠량을 거쳐 마량항까지 만조의 밤안개를 거느리고 코스모스길을 걸을 때의 감흥이 되살아났다. 고향은 바야흐로 푸르게 다시 시에서 돋아났다.

    “푸른 밤을 푸르게 가야 한다는 건 또 얼마나 슬픈 거고 내가 나를 아름답게 잠재워야 하는 모습이냐. 그동안 난 이런 밤의 옥수수 잎도, 옥수수 잎에 붙어 우는 한 마리의 풀벌레도 되지 못했구나. 여기에서 나는 어머니를 매단 저 둥근 사상과 함께 강진의 밤을 걷는다. 강진을 떠나 칠량을 거쳐 코스모스와 만조의 밤안개를 데리고 걷는다.”(‘푸른 밤의 여로’ 부분)

    우리는 ‘푸른 밤의 여로’를 오후에 차로 달렸다. 멀리 두륜산과 달마산이 해안을 나란히 달리는데 그 사이로 강진만이 오후의 역광으로 빛나고, 다시 근경에는 누런 벼들이 꽃밭처럼 함께 달렸다. 김 시인은 이 길을 깊은 밤 만조와 안개를 거느리며 느리게 걸었다는 것인데, 낮에 슬쩍 스쳐도 과연 그 ‘푸른 밤의 여로’가 나올 법한 비경이다. 강진읍에서 칠량을 거쳐 마량으로 가는 길목에는 처처에 코스모스들이 길가에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전망대 ‘양이정’에 내려 칠량바다를 내려다보며 농담을 하며 쓸데없이 웃곤 했다.

    시인의 생가는 장흥군 대덕면 분토리 대밭 아래 서 있었다. 번듯한 기와집이었고, 그것도 본채와 사랑채 두 채가 넓은 대지에 늠름하게 늘어선 형국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당엔 땡감들이 스스로 떨어져 어지러웠다. 시인은 성장기 어머니의 고통을 줄곧 농담 형식으로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바람 피운 대상이었던 ‘두부집 여인’을 ‘무공해 최루탄’으로 응징했다가 나중에 아버지에게 마당으로 끌려나와 신음소리 나도록 구타당해야 했던 어머니의 사연도 일행에게 시종 명랑하게 발설했다. 초등학교 졸업반 때 이웃마을 조숙한 여자아이에게 끌려 저수지 아래 어둑한 논둑길에서 동정을 빼앗겼던 이야기도 일행의 배꼽을 담보로 술술 털어놓았다. 보리밭에서 목격했다는 ‘빨간 엑스란 팬티’는 이런 분위기에서 터져나온 음담과 농담의 절정이었다.

    “나는 누워만 있는 것을 보면 올라가 보고 싶다./ 그 누워 있는 것들에 신나게 올라가서/ 한번 가쁜 숨을 매몰차게 몰아쉬고 싶다.// 가쁜 숨을/ 기쁘게/ 내쉴 것들을 고르다 보니,/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워 있는 침대, 누워 있는 천장, 누워 있는 하늘…….”(‘누워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올라타고 싶다’ 부분)

    그는 누워 있는 것만 보면 올라타고 싶다고 진술하다가 후반부에는 “나는 누워 잠자는 걸 보면 꼭 한번 올라타 보고 싶다./ 누워 있는 상사, 누워 있는 행정, 누워 있는 학문……”이라고 끝을 맺어 아리잠직한 분위기를 망치긴 했으나, 어쨌든 음담과 농담 사이에서도 빛나는 시를 건지는 재기발랄한 시인이다.

    그의 고향은 먼 남쪽이지만 삶의 현주소는 서울이다. 그가 고향에 간다고 하지만, 그는 기실 현실을 방기하고 떠도는 것일 게다. 그러니 먼곳을 돌아온 그이가 필연적으로 성찰할 수밖에 없는 이런 풍경, 진솔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골목이 시작되고, 골목 옆구리/ 파도 출렁대는 곳에 환한 창이 있다./ 그 창에선 초저녁부터 김칫국 냄새가 번지고/ 가끔 웃음소리도 들리곤 한다. 그런데 빠져나온/ 웃음소리 하나가 창을 부풀게 한다./ 자꾸만 부푸는 게 커다란 분홍 풍선이다./ 쪼그리고 앉아 그 풍선 잡고 있으니 내가 질질 끌려내려간다./ 끌려가 감나무에 걸려 대롱대다/ 바다에 빠져 죽을 것 같아 안간힘으로 버티어본다./ (……) 난 그 풍선을 잡고 먼 나라로 가고 싶다./ 항구란 배만 타는 곳이 아니라 그런 풍선을 잡고/ 더 따뜻하고 아늑한 나라로 출발하는 곳임을,/ 풍선에 바람이 빠져버리면/ 예서부터 흔들리는 귀환이 시작되는 곳임을/ 배운다, 마량항 부둣가에 고동처럼 붙어서.”(‘마량항 분홍 풍선’)

    고향 포구에 이르러 낮고 허름한 토담 너머로 흘러나오는 따뜻한 가족의 웃음소리를 접했던 것인데, 그 풍경이 두고 온 집의 쓸쓸한 식탁을 상기시켜 ‘마량항 분홍풍선’ 같은 분홍빛 슬픔의 상상력이 발동된 것이었다. 타지를 떠돌지 않고 타인을 탐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그리워할 수 없는 가족과 고향을 그는 궁극에 움켜잡은 셈이다. 그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술로 빠졌거나 패가망신했을 것”이라며 “시는 내 모든 걸 구원해 주고 품어주는 종교 같은 것”이라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 종교 때문에 그는 날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가.

    “내 사고의 총 생산, 나의 제품들은/ 고객들 요구에는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고객들의 따뜻한 밥이 되고, 술이 되고 있는 걸까?”(‘나의 제품은 고객감동을 지향한다’ 부분)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푸른 밤의 여로
      - 강진에서 마량까지

    김영남

     
      둥글다는 건 슬픈 거야. 슬퍼서 둥글어지기도 하지만 저 보름달을 한번 품어보아라. 품고서 가을 한가운데 서봐라.

      푸른 밤을 푸르게 가야 한다는 건 또 얼마나 슬픈 거고 내가 나를 아름답게 잠재워야 하는 모습이냐. 그동안 난 이런 밤의 옥수수 잎도, 옥수수 잎에 붙어 우는 한 마리의 풀벌레도 되지 못했구나. 여기에서 나는 어머니를 매단 저 둥근 사상과 함께 강진의 밤을 걷는다. 강진을 떠나 칠량을 거쳐 코스모스와 만조의 밤안개를 데리고 걷는다. ‘무진기행’은 칠량의 전망대에 맡겨두고 부질없는 내 시와 담뱃불만 데리고 걷는다. 걷다가 도요지 대구에서 추억의 손을 꺼내 보름달 같은 청자 항아릴 하나 빚어 누구의 뜨락에 놓고, 나는 박처럼 푸른 눈을 욕심껏 떠본다.

      구두가 미리 알고 걸음을 멈추는 곳, 여긴 푸른 밤의 끝인 마량이야. 이곳에 이르니 그리움이 죽고 달도 반쪽으로 죽는구나. 포구는 역시 슬픈 반달이야. 그러나 정말 둥근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고 내 고향도 바로 여기 부근이야.
      ■김영남 연보
    ●1957년 전남 장흥 출생
    ●중앙대학교 경제학과·예술대학원 졸업
    ●1988년 ‘월간문학’ 신인상 ‘월동일기’ 외 1편 당선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정동진역’ 당선
    ●윤동주 문학상, 중앙문학상, 문학과창작 작품상, 현대시작품상 수상.
    ●시집 ‘정동진역’ ‘모슬포 사랑’ ‘푸른 밤의 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