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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 동시 - 제 19 편] 개구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4. 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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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 동시 - 제 19 편] 개구리
한 하 운
소록도 가는 길… 개구리 讀經 소리 가득하구나
장석주·시인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가.



라랴 러려

로료 루류

르리 라. 

(1949)

▲ 일러스트 양혜원

한하운(1919~1975)은 함경남도 함주 태생으로 본명은 태영(泰永)이다. 한때 경기도청의 공무원이었는데, 한센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하다가 1948년에 남쪽으로 내려 왔다. 1949년에 첫 시집 《한하운시초》(1949·정음사)를 냈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전라도길〉) '문둥병'이라는 천형의 병고를 지고 걷는 인생길은 팍팍해서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숨 막힌 길이었겠다.

그 숨 막히는 길에 개구리 울음 소리는 천둥 치는 듯하다. 그 굉음(轟音)이 시방세계를 떠밀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산 것들은 왜 태어나는가. 산 것들은 왜 저리도 울어대는가. 저 무논에서 울려 퍼지는 제창(齊唱)을 그레고리오 성가라면 하면 안 되나. 호모 사피엔스는 저 양서류의 떼울음 소리를 어린 것이 한글 자음과 모음을 외는 소리로 들었다. 묵독(默讀)이 아니다. 어린 것들은 낭랑한 목청으로 음독(音讀)한다. 호모 사피엔스여, 너의 유아독존과 이성(理性)을 자랑하지 마라. 봄밤은 온통 법당이고, 저 미물의 소리가 바로 게송(偈頌)이다. 소록도는 먼데, 개구리 울음 소리는 세상에 그득하다. 지구가 자전(自轉)하는 이 밤에도 저 어린 것들의 학습 진도는 거침이 없구나. 가갸 거겨에서 시작해서 벌써 라랴 러려까지 나갔구나.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듣는 자는 필경 집 밖에 있는 자다. 집 나와 길 가는 자는 승려나 걸인이나 '문둥이'거나 모두 출가자(出家者)다. 밤하늘을 지붕 삼고, 산발한 채 노래하며 길을 걷는 것은 한산(寒山)만이 아니다. 시인 한하운도 개구리 우는 봄밤을 하염없이 걸어 남행한다. 천안 논산 익산 정읍 지나 구례쯤 왔을까. 걸어온 길 아득한데, 저 달빛 아래 뻗은 황톳길은 더 아득하다. 버드나무 밑에서 숨을 고르며 신발을 벗는데, 발가락이 또 한 개 사라졌다. 이렇듯 산다는 것은 제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잃는다는 것이다. 더 잃을 게 없을 때 우리는 이 육체라는 무거운 짐마저 벗어두고 세상을 뜬다. 그게 해탈(解脫)이고, 우화등선(羽化登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