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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손 맞잡으면 평화가 꽃피죠
손을 기다리는 건
어제 새로 깎은 연필,
내방문의 손잡이,
손을 기다리는 건
엘리베이터의 9층 버튼,
칠판 아래 분필가루투성이 지우개,
때가 꼬질꼬질한 손수건,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책상 틈바구니에 들어간
30센티미터 뿔자,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퍼즐 조각 하나,
정말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손, 꼬옥 잡아 줄
또 하나의
손.
- ▲ 일러스트=양혜원
세대교체를 이루며 아동문학에서도 시와 생활이 우열 관계에 있지 않고 동위(同位)에 서 있다는 깨달음이 확고해졌다. 동시의 상상력은 미려한 몽상과 모호한 환상의 탐닉에서 생활 체험의 구체성으로 옮겨왔다. 신형건의 동시는 구체적인 것에서 시적 징후를 찾는다. "엄마, 깨진 무릎에 생긴/ 피딱지 좀 보세요./ 까맣고 단단한 것이 꼭/ 잘 여문 꽃씨 같아요./ 한번 만져 보세요./ 그 속에서 뭐가 꿈틀거리는지/ 자꾸 근질근질해요./ 새 움이 트려나 봐요."(〈봄날〉) 깨진 무릎에서 잘 여문 꽃씨를 연상하는 것은 상상이 구체적 실감의 안쪽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동시에서 판타지는 줄고 아동 생활의 구체적 실감은 커졌다.
〈손을 기다리는 건〉에서도 손과 접속하는 것은 연필, 방문 손잡이, 엘리베이터의 9층 버튼, 지우개, 손수건, 뿔자, 퍼즐 조각 같은 구체적 사물들이다. 손은 잡고 모으고 자르고 끊고 찢고 깨고 묶고 꿰매고 뒤집고 쓰다듬고 쥐고 빼고 넣고 닦고 씻고 한다. 손은 마술적 만능 공작 도구이자 놀라운 의사소통의 보조수단이다. 시인은 노동의 매개이자 생활의 역군인 손의 쓰임을 주목하고 그 생태학을 포착한다. 손에는 폄근과 굽힘근이 있어 펴고 쥠이 자유롭다. 그래서 연필을 깎고, 방문의 손잡이를 돌릴 수 있다. 아울러 손은 촉각의 주요 기관이다. 뜨겁고 차갑고, 연하고 거친 것을 분별하는 일은 촉각소체가 발달한 손의 일이다. 손을 뻗어 "책상 틈바구니에 들어간/ 30센티미터 뿔자"를 꺼낼 수 있는 것도 손의 예민한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의 발달 때문이다. 손은 생활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도구다. 손을 다쳤을 뿐인데, 몸 전체가 멍청해진다! 손의 가장 중요한 일은 누군가의 다른 "손, 꼬옥 잡아" 주는 일이다. 손과 손이 이어지면 다툼과 갈등은 줄고 사랑과 우정은 커진다. 손과 손을 맞잡으면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가 꽃핀다.
입력 : 2008.06.1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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