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 한혜영
핸드폰 한 대씩은 새들도 갖고 있지.
지붕 위 새 한 마리 어딘가로 전화 걸면
그 소식 반갑게 받은 짝궁 하나 날아오고.
어쩌면 새가 먼저 핸드폰을 썼을 거야.
전화선도 필요 없고 수화기도 필요 없고
저 하늘 푸른 숫자판 부리 하나면 간단한 걸.
삐룩삐룩 여보세요 또로로롱 사랑해요.
우리 동네 아침 시간 혼선되는 새소리들
그래도 끼리끼리는 척척 듣고 통화하네.
'핸드폰 한 대씩은 새들도 갖고 있지...어쩌면 새가 먼저 핸드폰을 썼을 거야...삐룩삐룩 여보세요 또로로롱 사랑해요'........착상도 기발하고 감각적인 의성어도 재밌습니다. 한혜영 시인의 홈에 가 보았더니 시 뿐 아니라 소설, 동화, 꽁뜨, 시조, 동시조 등 각 장르의 글을 다 쓰는 다 방면의 작가더군요.
핸드폰 이라는 동시조 말고 '해질 무렵 닭장에서' 라는 동시조도 재미있어 같이 감상해 보고 싶어 올려봅니다.
어미닭 날개 밑에
아홉 마리 병아리들
감쪽같은 마술사도
소리만은 못 숨기죠.
꾸꾸꾸
눈치도 없이
자꾸만 새는 소리.
철없는 어린 것이
고개 살짝 내어 밀면
대번에 알아채고
꾹꾹꾹 나무라는
어미닭
날개 속으로
짧은 봄날이 저물어요.
「해질 무렵 닭장에서」전문
이 두 동시조를 보면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억지스럽거나 꾸민 곳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말은 전통민요에서 보듯이 3자 4자로 되어있어서 시조 엮기에 알맞다고 하는데 실제로 시조는 45자 내외의 음수율과 12음보와 종장의 전구 3자는 불변이라는 제한 때문에 자유시보다 쓰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걸 반영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된 현대시 100주년 기념 한국문학선집 1900∼2000에 나오는 시인 166명 중에 시조시인은 고작 10명 내외에 불과합니다. 김상옥, 김제현, 윤금초, 이병기, 이상범, 이태극, 이호우, 조운, 그리고 자유시를 쓴 최남선까지 쳐도 9명입니다. 자유시에 비해 인적(시인), 물적(작품)으로 엄청난 열세에 놓여있습니다. 작품이 많지 않다 보니 자유시에 비해 좋은 작품의 양도 많지 않을 수밖에 없겠지요.
5.7.5의 음수율로 이루어졌으며 17자로 된 일본의 전통시인 하이쿠는 일본국내에서도 짓는 인구가 50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하이쿠의 국제화로 세계 각국에서 자국어로 하이쿠를 짓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어미닭 날개 속으로 짧은 봄날이 저물어 가는' 싯구는 아름답지만 우리나라 전통시인 시조가 저물어가서는 안 되겠지요.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밥 / 장석주 (0) | 2010.05.12 |
---|---|
몸바쳐 밥을 사는 사람 내력 한마당/고정희 (0) | 2010.05.10 |
선녀의 선택 / 유안진 (0) | 2010.05.05 |
강이 날아오른다 / 손택수 (0) | 2010.05.01 |
그리운 연어 / 박이화 (0) | 2010.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