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몸바쳐 밥을 사는 사람 내력 한마당/고정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5. 10. 09:48
728x9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시집의 앞날개에 실린 사진>





밥과 자본주의
몸바쳐 밥을 사는 사람 내력 한마당/고정희


(쑥대머리 장단이 한바탕 지나간 뒤 육십대 여자 나와 아니리조로* 사설)

구멍 팔아 밥을 사는 여자 내력 한 대목
조선 여자 환갑이믄 세상에 무서운 것 없는 나이라지만 
내가 오늘날 어떤 여자간디
이 풍진 세상에 나와서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똥배짱으루
사설 한 대목 늘어놓는가 연유를 묻거든
세상이 묻는 말에 대답할 것 없는 여자,
그러나 세상이 묻는 말에 대답할 것 없는 팔자치고
진짜 할 말 없는 인생 못 봤어
내가 바로 그런 여자여
대저 그런 여자란 어뜬 팔자더냐(장고, 쿵떡)
팔자 중에 상기박한 팔자를 타고나서
부친 얼굴이 왜놈인지 뙤놈인지 로스케인지 
국적 없는 난리통 탯줄 잡은 인생이요
콩 보리를 분별하고 철든 그날부터
가정훈짐 부모훈짐 쐬본 적 없는 인생이요
밥데기 애기데기 구박데기로
식자마당 밟아본 적 없는 인생이요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추풍낙엽 동지섣달 긴긴 계절에도
거저 주는 밥 한 그릇 못 먹은 인생이라(허, 그래)

조국 근대화가 나와 무슨 상관이며
산업발전 지랄발광 나와 무슨 상관이리
의지가지 하나 없는 인생이 서러워
모래밭에 혀를 콱 깨물고 죽은들
요샛말로 나도 홀로서기 좀 해보자 했을 때
아이고 데이고 어머니이
수중에 있는 것이 몸밑천뿐이라
식모살이도 이제 싫고
머슴살이도 이제 싫고
애기데게 부엌데기 구박데기 내 싫다,
깜깜절벽 같은 줄 하나 잡으니
그게 바로 구멍 팔아 밥을 사는 여자 내력이라(허, 좋지)

내 팔자에 어울리는 말로 뽑자면
(유식한 분들은 귀 좀 막아! )
씹구멍에 차려놓고 하
씹 - 할  - 놈의 세상에서
씹 - 할  - 년 배 위에 다리 셋인 인간 태우고
씹구멍 바다 뱃길 오만 리쯤 더듬어온 여자라
(장고, 쿵떡)

내 배를 타고 지나간 남자가 얼마이드냐,
손님 받자 주님 받자
이것만이 살 길이다,
눈 뜨고 받고 눈 감고 받고
포주 몰래 받고 경찰 알게 받고
주야 내 배 타기 위해 줄선 남자가
동해안 해안도로 왔다갔다 할 정도였으니
당신들 계산 좀 해봐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선가 용산 가는 길에선가
그 여자 배 위로 지나간 남자가
한 개 사단 병력이었다고 하는디
내 배 위로 지나간 쌍방울은
어림잡아 백 개 사단 병력 가지고도 모자라(얼쑤 - )

개중에는 별별 물건 다 있었제
말이라면 하늘의 별도 딸 수 있는 물건
돈이라면 처녀불알도 살 수 있는 물건
만원 한 장이믄 배 수척 작살내는 물건
여자 배타고 하늘입네 하는 물건
들어올 때 다르고 나갈 때 다른 물건
돈만 내고 가겠네 하다가 꼭 하고 가는 물건
한 구멍 값 내고 다섯 구멍 넘보는 물건
하 동정입네 하면서 동정받고 가는 물건.....
이런저런 물건들이
그 잘난 좆대가리 하나씩 들고
구멍밥 고파 찾아오는 곳이 홍등가여
그러니까 홍등가는 구멍밥 식당가다, 이거여
그것도 다 정부관청 인가받은 업소이제
아 막말로 지 구멍 팔아먹는 장사처럼
정직한 밥장사가 또 어디 있으며
씹할 때처럼 확실한 인간이 또 있어?
구척장신 영웅호걸이라 해도
겹겹이 입은 옷 다 벗고 보면
흰놈 검은 놈 따로 없고
잘난 놈 못난놈이 오십보 백보라(허, 그래)
인생이 다 밥 한 그릇 연유에 울고 웃는 순진한 짐생이야 !
그런디 세상은 하 요지경 속이라
오늘날 떵떵거리는 모모재벌기업 밥장사들
아름다운 금수강산
천가람에 독극물 풀어
수돗물에 악취오염 펑펑 쏟아지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않고 건재하는가 하면
세상 차별인생이 구멍밥 장사여
지 밑천 팔아 목숨 연명하는 인생을
세상은 '갈보'라고 쉬쉬해
구멍밥 장사가 생전에 무슨 죄가 있다고
아 요즘 그 흔한 동맹파업이니
몸값 인상 시위니, 씹할 권리투쟁 한번 안 일으켰는데
어찌하여 구멍밥 먹는 놈은 거룩하고
구멍밥 주는 년은 갈보가 되는 거여?
까마귀 뱃마닥 같은 소리 하지를 말어,
구멍 팔아 밥을 사는 팔자 중에
지 혼 파는 여자 아무도 없어
구멍밥 장사는 비정한 노동이야
물건 대주고 밥을 얻는 비정한 노동이야
혼 빼주고 밥을 비는 갈보로 말하면야
여자옷 빌려 입고 시집가는 정치갈보
지 영혼 팔아먹는 권력갈보가 상갈보 아녀?
아 고것들 갈보 데뷔식도 아주 요란벅적해
금테 두른 이름표 하나씩 달고
염색머리에 유리잔 부딪치면서
정경매춘 곷다발 여기저기 꽂아놓고
백성의 오복길흉이 마치
정치갈보 권력갈보 흥망에 달려 있는 것처럼
오구잡탕 거드름을 떨어 (장고, 쿵떡)
(정치갈보 몰아내고 민주세상 앞당기자)

내 식자마당 그림자도 밟아본 적 없고
지체 높은 집 문턱도 넘어본 적 없지만
구멍밥 장사로 백팔번뇌 넘다 보니
밥과 인생에 대해
명예박사학위 서넛쯤은 너끈해
구멍으로 쓰는 논문 좀 들어봐
인두겁이 벗겨지고
똥 내력이 뚜렷해질 거야(허, 시원하게 벗겨봐)

(삼현청 장단 자지러지면 오십대 여자 나와 중모리풍으로 사설)

구멍밥으로 푸는 똥 내력 두 대목

사람 사는 인생길이 다 한가지라 하지만두
따져보면 엄연히 옳고 그름 있으니
그 먹고 싸는 밥과 똥 연유라
세상이 두쪽 난 두 밥이 있을진대
자본주의 꽃이라는 섹스밥이 그 하나요
사회주의 꽃이라는 혁명밥이 그 둘이라(장고 쿵쿵떡)
밥그릇에 담긴다고 다 밥이 아니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다 밥이 아닐진대
위로 먹고 아래로 싸는 똥냄새 식별할 제
백폐만상 인생 내력애 바로 똥 내력이로구나
(추임새 - 허, 똥 내력이로구나)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물똥냄새야 물똥천지야
물정치 물난리가 무능 탓인지만 알았더니
육탈 안된 송장보다 썩는 냄새 충천하다
물정치 물난리가 썩기까지 하였으니 
명경처럼 맑고 정한 천의 강과 호수
심산유곡 자태 울연한* 이 강토 산과 들에
왼갖 썩은물 굽이굽이 흘러들 제
남쪽에서 발원하는 바람이여
너마저 똥냄새로 창궁을* 채우는구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여
너 또한 똥냄새로 해를 들어올리누나
수도꼭지마다 썩은물 콸콸 쏟아지는구나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오
물밥 말아먹고 물동 싸는 인생
꼭두밥 말아먹고 하수인똥 싸는 인생
낚시밥 말아먹고 도토리똥 싸는 인생
개밥 말아먹고 쉬파리똥 싸는 인생
변절밥 말아먹고 앵무새똥 싸는 인생
분단밥 말아먹고 피눈물똥 싸는 인생
매판밥 말아먹고 매국똥 싸는 인생
양키밥 말아먹고 칼똥 싸는 인생
착취밥 말아먹고 바늘동 싸는 인생
유착밥 말아먹고 저승똥 싸는 인생
권력밥 말아먹고 음모똥 싸는 인생
부정밥 말아먹고 사자똥 싸는 인생
인맥밥 말아먹고 지역똥 싸는 인생
가부장밥 말아먹고 하늘동 싸는 인생
(아 하늘이 왜 똥을 싸 똥을 싸긴!)

아이구 구린내야 아이구나
똥 - 천 - 하 - 자본이야
개도 마다하는 이 똥천지를 보자보자 하니
그 입에서 노는 혓바닥과 똥이 매한쌍이다(허, 쳐라)
그 먹는 대로 싸는 것이 똥일진대
이제부터 인생은 똥이라 말해둬
그 취한 대로 먹는 것이 밥일진대
아제부터 똥을 봐야 밥을 안다 말해둬
진짜 밥을 먹어야 진짜 똥을 싸제
문전옥답 거름똥이 어뜬 똥이던가
지 땀으로 사는 인생 각자 밥이 있다 할 제
한 생명을 태우고 먹는 첫국밥이 있고
일 나갈 때 먹는 새벽밥이 있고
민초끼리 나눠먹는 들밥이 있고
인정으로 나눠먹는 고봉밥이 있고
동지끼리 나눠먹는 주먹밥이 있고
배고픈다리 넘어가는 보리밭이 있고
허튼귀신 몰아내는 오곡밥이 있고
이웃끼리 나눠먹는 대동밥이 있을진대
이 밥을 먹고 나면 거름똥 아니던가
자유세상 찾아 먹는 민주밥이 있고
평등세상 찾아 먹는 해방밥이 있고
통일세상 찾아 먹는 평화밥이 있고
공명세상 찾아 먹는 화합밥이 있고
개벽세상 찾아 먹는 민중밥이 있고
정의세상 찾아 먹는 사랑밥이 있을진대
이 밥을 먹고 나면 사람똥 아니던가
(허, 얼쑤! 지화자 꼬르륵)

아직도 인생이 무어냐고 묻거든
지 땀으로 사는 인생 거름똥이라 말해둬
순리대로 사는 인생 사람똥이라 말해둬
이제부터 물정치 물밭인생 물똥 끝장내고
허튼자본 허튼밥 허튼똥 끝장내고
분단세상 분단밥 끝장내고
억압세상 비리밥 끝장내고
백수건달 인생 혀끝 하나로 먹는 밥 끝장내고 
지 땀으로 거두는 알곡인생 살자 할 제
자본주의 꽃이라는 섹스밥이여
허틀 섹스밥이 바로 매춘 내력이로구나
사회주의 꽃이라는 혁명밥이여
허튼 혁명밥이 바로 허튼 조국 내력이로구나
(휘몰이장단이 한바탕 지나간 뒤 중년 여자 나와 자진모리퐁으로.....)

허튼밥으로 푸는 매춘 내력 세 대목

구멍 파는 것만 매춘이 아니요
홍등가에 있는 것만 매매춘이 아닐진대
자고로 허튼밥이 매매춘 근원이라
흰밥을 검은밥으로 바꿔놓고
그른밥을 옳은밥으로 우격질하는
천하지본허튼자본님이 들어오실 제
허튼정치 허튼돈줄 권력매춘이요
허튼기업 허튼축재 양심매춘이요
허튼국방 허든행정 총칼매춘이요
허튼평화 허튼우방 매국매춘이요
허튼개혁 허튼숙청 지조매춘이라
허튼교육 허튼배움 인생매춘이요
허튼자리 허튼헌신 신념매춘이요
허튼의리 허튼단결 감정매춘이요
허튼자유 허튼권리 정신매춘이요
허튼특권 허튼출세 영혼매춘이라
어허라 사람들아
허튼사랑 있으니 허튼욕심이 있고
허튼욕심 있으니 허튼밥이 있구나
허튼밥이 있으니 허튼길이 있고
허튼길이 있으니 허튼꿈 천치구나
허튼꿈 있으니 허튼섹스 천지구나
어허라 사람들아
저승사자도 아니 먹는 허튼밥 세상이로다
몽달귀신도 마다하는 허튼사랑밥 세상이로다
(휘몰이장단에 칼춤......)

이제부터 인생이 무어냐고 묻거든
허튼삶 삽질하는 힘이라 말해둬
이제부터 목숨이 무어냐고 묻거든
허튼넋 몰아내는 칼이라 말해둬
대쪽 같은 사람들아
금쪽 같은 사람들아
각자 목숨에 달린 허튼밥줄 가려내 !
각자 연혁에 얽힌 허튼돈줄 잘라내 !
진짜밥 진짜사랑 뉘 아니 그릴쏜가
허튼밥줄 끊고 나면 눈이 뜨일거야
허튼돈줄 자르고 나면 새 길이 열릴거야
새벽이 오기 전에 매춘능선 넘어가세
이 밤이 가기 전에 허튼꿈 불을 놓으세
허,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허튼넋 허튼바람 활활 타는 불이로다

*아니리 - 판소리에서 소리와 소리사이에 곡조를 붙이지 않고 이야기 
              하듯 극적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
<고정희 유고시집遺稿詩集>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베스트셀러 시집이 좋은 시집이라는 등식은 맞지 않지만 일반인에게 널리 회자되는 시가 명시라고 
본다면 애써 외면을 해도 연시 역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정희 시인이 연시를 써서 실망을 했다는 사람도 있으나 쓸쓸한 날의 연가, 그대 생각, 강가에서  등  
연시편들을 읽어보면 가까이 하고 싶은데 누군가가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가슴이 쓰리고 
아려옵니다. 
이 시... '몸바쳐 밥을 사는 사람 내력 한마당( 매춘여성의 실태, 구멍 팔아 밥을 먹는 여자이야기)' 은 
고정희 시인이 1991년 필리핀에서 귀국하면서 들고 왔다고합니다. 
거칠거 없이 막힌데 없이 막  뿜어져나오는 걸쭉한 입담이 통쾌하기도 하고 속시원하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밥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환갑된 여자를 화자로 내세웠지만 실제 고정희 시인은 사집대도 다 살아보지 못했지요. 
필리핀에서 돌아온 후 의욕에 차서 모든 사무적인 일은 당분간 그만 두고 시작詩作에만 열중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지리산 등반을 떠났는데 그 해 6월 9일 뱀사골에서 실족사를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같은 세상을 남보다 다른 눈으로 보며 절망하고 분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희망을 노래하며 가슴에
불길을 담고 살았던 시인. 살아계셨다면 또 다른 불길로 한창 무르익은 시를 쏟아내었을텐데... 
안타까운 일이죠.
 

은희 / 해바라기 / 트윈폴리오 / 하모니카연주 / 기타연주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화삼(玩花衫)/조지훈   (0) 2010.05.14
밥 / 장석주   (0) 2010.05.12
핸드폰 / 한혜영   (0) 2010.05.07
선녀의 선택 / 유안진   (0) 2010.05.05
강이 날아오른다 / 손택수  (0) 2010.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