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완화삼(玩花衫)/조지훈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5. 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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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삼(玩花衫)/조지훈
- 목월(木月)에게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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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_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천양희 시인의 시 '직소포에 들다' 는 13년만에 완성이 되고 '마음의 수수밭'은 8년만에 얻어졌다고 합니다. 신경림의 '목계장터' 같은 경우는 수정을 거듭하며 몇 군데 발표를 했는데 반응이 신통찮아 버려놓다시피 했던 것을 염무웅에 의해서 시집에 다시 수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처럼 조지훈의 '승무' 라는 시도 오랜 기간을 두고 고쳐 썼다고 하는데 이 시의 제목 '완화삼'은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으로,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시는 쓰여진 시기가 일제시대이고 시대적 배경이 되다보니까 그런 해석이 나오는지 모르지만 비극적 조국의 현실 때문에 이상 세계에 갈 수 없는 현실을 나그네가 되어 유랑의 길을 떠나는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목월에게'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완화삼(玩花衫)은 박목월 시인에게 보낸 시입니다. 박목월 시인은 이 시를 보고 답시를 쓴 것이 "나그네" 인데 나중에 '나그네' 시가 훨씬 더 유명해졌습니다. 이 시에 대해서 신경림 시인은 '목월의 '나그네'와 비교하면서 읽으면 재미있을 것이다' 고 하면서 주고받은 시에서 차용은 허락되는 관례이기 때문에 몇 군데 이미지가 추출되었다고 모방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신경림 시인은 모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이 다르게 말하기도 합니다. 모를 때 몰랐는데 알고 보니 모작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이미지가 비슷하다구요. 그러나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유사한 시는 많으니까요. 가령 어떤 시를 보고 울림이 있어 글을 썼다고 해서 같을 수는 없겠지요. 영국 시인 예이츠의 '하늘의 옷감' 이라는 시를 읽어보면 한국적 정서의 시 세계를 개척했다고 하는 김소월의 대표작 '진달래꽃' 은 이 시에서 포맷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흡사한 느낌을 받습니다.

 

'진달래꽃'이 '하늘의 옷감'의 꿈의 이미지를 꽃의 이미지로 차용을 했고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다 예이츠가 시대적으로 앞선 사람이니 누가 봐도 소월이 예이츠의 시를 보고 착상을 하지 않았나 싶은 정도로 유사하지만 우리네 민족적 정서로 봐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시어들이 서정적인 울림이 크고 싯적 완성도 면에서도 나은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어디서 가져왔다는 핸디캡의 꼬리를 떨쳐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목월의 나그네 시도 대화체의 간략한 이미지로 여운이 많이 남지만 하염없이 유랑하는 고달픈 설음이 짠하게 배여 있는 조지훈의 완화삼이란 시가 좋아서 '낙화' 란 시와 더불어 줄줄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낙화' 하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로 시작되는 이형기의 '낙화' 라는 시가 더 유명한데 `'꽃이 지기로서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 로 여는 조지훈의 '낙화'라는 시도 참 좋습니다. <정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