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하늘의 옷감 / W.B. 예이츠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5. 1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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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옷감 / W.B. 예이츠

 


내게 금빛 은빛으로 수놓아진
하늘의 옷감이 있다면
밤의 어두움과 낮의 밝음과 어스름한 빛으로 된
푸르고 희미하고 어두운 색의 옷감이 있다면
그 옷감을 그대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은 꿈밖에 없으니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아드리오니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대가 밟는 것은 내 꿈이기에.

 


ㅡ김억 번역시집,『오뇌의 무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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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엔 약산
그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발걸음마다
뿌려놓은 그 꽃을
고이나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ㅡ1922년 『개벽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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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ㅡ1925년 첫시집 『진달래꽃』판.

 

 

예이츠의 '하늘의 옷감' 과 김소월의 '진달래꽃'입니다. 보시면서 먼저 나온 개벽판과 뒤에 나온 진달래꽃판을  같이 올린 것은 개정판에서 시의 리듬감이 훨씬 좋아진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개벽판에는 1연에 리듬이 엉키는 '고이고이'를 '고이' 로 고쳤고, 2연 2행의 군더더기 같은 [그]와 [을] 삭제했으며 3행에 [한]도 빼므로서 리듬감을 살렸습니다. 3연은 '발걸음마다'를 '걸음걸음'으로 고치며 이어지는 '뿌려놓은'을 '놓인' 으로 어감이 어색한 '고이나'는 리듬이 같으며 보다 뜻의 전달이 잘 되는 '사뿐히' 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의 결구에 있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의 아니와 눈물 사이의 '쉼표'를 없애므로서 이별의 슬픔과 고통을  제어하는 반어적 어법을 연속성으로 이어놓았습니다.

 

이렇게 시의 내용(기의)은 변하지 않으나 형식[기표]을 달리 하므로서 울림이 커지고 매끄러워지고 한층 세련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시는 소설처럼 기의 문학이 아니라 기표의 문학이라 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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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은 김소월의 스승으로 예이츠의 시를 번역했다고 합니다.
김소월이 '진달래꽃'을 발표한 것은 1922년, 김억이 예이츠의 시를 번역한 것이 1921이고
 '사뿐히, 즈려밟고' 로 옮긴 것은 김억만의 독창적인 표현법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옷감' 끝행에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는 김소월이 스승이 번역해 놓은 것을 차용한 것이지요.
 
 
김소월의 시집을 읽고 시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구요.
그런데 막연히 들어온 시의 동굴 속에서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코를 석자도 아닌 넉자를 빠뜨리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