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말을 잃는다. 절경(絶景)이나 아름다운 기물(器物), 숨이 턱 막힐 듯 수려한 미인을 본 뒤 그 심미적 경험을 어떻게 말로 형용하고 문자로 쓸 수 있겠는가! 대상이 뿜어내는 눈부신 아우라는 지각은 할 수 있으되 표현은 불가능하다. 시인은 다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기다."라고 겨우 쓴다. 토파즈 보석보다 더 찬란한 이 신생의 아름다움 앞에서 시인은 말문이 막힌다.
미적 감각의 근원을 자극하는 이 대상 앞에서 말문의 막힘은, 즉 말과 수사학의 고갈은 겨우 말의 더듬거림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 결과가 "아기의 눈./ 아기의 코./ 아기의 입./ 아기의 귀."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극치의 미로 빛나는 영혼의 회화다. 이미 절대미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달리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로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순간 그것은 저 멀리 달아난다. 말문이 막혀버린 시인을 이해하자. 이 시에서 독창적인 표현이라곤 마지막 연뿐이다. "아기는/ 이따가 필 꽃이다." 이 구절이 없었다면 이 시는 시가 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기는 지금-여기에 존재하는 현실태이자, "이따가 필 꽃", 즉 앞으로-존재할 미적 가능태이다.
오순택(66)은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나고, 1966년에 시인 전봉건이 주재하던 시 전문지 《현대시학》에서 추천받아 등단한 시인이다. 그가 쓴 최고로 사랑스러운 동시는 〈뽀꼼 열려요〉일 것이다. "엄마가/ 아기 똥꼬를/ 들여다봐요.// 꼭/ 나비가 꽃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요.// 똥꼬가/ 뽀꼼 열려요.// 튜브에서/ 치약이 나오듯/ 똥이 나와요."(〈뽀꼼 열려요〉) 나비가 꽃을 들여다보듯 엄마는 아기 똥꼬를 바라본다. 똥꼬가 열리고 똥이 나오는 그 순간에 엄마는 넋을 잃는다. 어떤 꽃이 피어나는 순간보다 더 벅찬 환희를 안기기 때문이다. 봄과 보임 사이에서 아기는 기적의 생명-우주이며, 저 스스로 완전한 기쁨이다. 나날이 낡아가는 이 세계는 아기들로 말미암아 신생의 기운을 얻는다. 아기야말로 우리가 만난 유일한 미적 현존이요, 세계의 신성한 무상성(無償性)이고, 덧없는 삶에 주어지는 기쁨임을 시인은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