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 창작 강의 (8)
시어의 투명성
안이 맑게 비쳐 보이는 냇물은 보기에도 좋습니다. 그러나 흐릿하여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냇물은 답답함을 줍니다. 시에도 냇물처럼 속이 들여다보이는 것과 그렇지 못한 시가 있습니다. 시인이 느끼고 가지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 독자에게 전달되어 함께 공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의도한 바가 투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독자는 한편의 시에서 감동 받기를 원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에서 무엇인가를 읽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것을 시에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시인이 가진 의미는 결국 언어에 의해 표현된다는 사실은 앞에서 언급하였던 것과 같고 그래서 시의 언어는 투명한 유리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어가 지닌 의미가 시인의 이미지를 적확하게 표현하여 전달이 쉬워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우유빛 유리처럼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애매한 언어로 쓰여 있거나 쓰임새가 애매하다면 그 시는 애매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시는 그것을 통하여 또 다른 세계를 보여 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찔레꽃 핀 여름이면/ 내가 그리워
소낙비를/ 육자배기 가락처럼
하나씩 뽑아/ 떠오르는 무지개로
망초꽃, 산나리 그려 넣는다/ 신사임당도 부럽지 않은
옛 조상들의 판소리는/ 환상의 시간 속에
뛰어넘는 기억 뿐/ 신세대가 몰고 오는
에어콘 바람은/ 돌고 도는 유행의 심판
너는/ 잠의 재를 털고 일어서는
긴 시간의 여행자
독자의 시 <부채> 전문
위 작품을 대하면 첫째 어렵게 느껴집니다. 언어의 쓰임새가 정확하게 이루어져 있지 않아서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작가 나름대로 부채의 쓰임새와 그에 대한 의미를 고찰하고 있으나 2행의 ‘내’가 시적 화자인지 부채의 의인화된 주관인지 애매하고, ‘찔레꽃 ~ 그려 넣는다’ 와 ‘신사임당 ~ 시간 속에’의 표현에서 무슨 의미를 전달하려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잠의 재’에 대한 문학적 논리성도 결여되어 있습니다. 위 시에서는 할 말은 분명히 있으되 그것을 어렵게 표현하려다 그만 애매한 표현에 그쳐 버렸습니다.
습작기에는 이런 유의 작품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시적 표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언어를 어렵게 갈무리하면 그것이 시가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입니다. 좋은 시란 쉬운 언어로 씌여집니다. 단지 쉬운 언어의 쓰임새가 범상치 않은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아무나 쓸 수 없는 세계가 됩니다. 좋은 작품은 넓은 공감대의 폭을 가지게 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쉽게 읽혀지는 투명한 언어로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향들은 어쩌면 1960년대의 현학적인 시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아 독자를 혼란 속에 빠뜨리고 그것이 마치 새로운 언어질서에 의한 시의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오인되기 십상입니다. 시적 표현이란 언어의 새로운 결합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새로운 이미지란 투명성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시가 가진 세계가 들여다보이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애매하다고 말합니다. 애매성이란 낱말의 상호 결합된 상태에서의 의미, 상호보조를 필요로 하는 의미, 각 의미의 연합으로 인하여 생기는 한 관계나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런 애매성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게 합니다. 애매성은 시인과 독자와의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엠프슨에 의하면 애매성 그 자신이 의미할 수 있는 것으로
1)무엇에 관하여 말할 것인가에 대한 미결정 상태로 시인이 스스로 해야 할 말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우유부단하거나 밝히지 않는 것입니다.
2) 여러 가지 사물을 동시에 말하고 싶어하는 의도.
3) 이것이나 저것, 혹은 그 두개를 동시에 말할 수 있는 가능성.
4) 하나의 진술이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 등입니다.
1)의 경우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가 없겠으나 그 뒤의 경우는 시인이 주의를 한다면 극복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애매의 유형으로는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1) 음성적 애매성- 동음이의어에 의한 애매성입니다. 이는 ‘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인가 눈물인가’에서 ‘눈’과 ‘눈물’에 대한 같은 발음에 따라 그 의미를 무엇으로 이해할 것인지 망설이게 하는 경우입니다.
2) 문법적 애매성- 언어 형태상 한 단어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때 나타나는 애매성입니다.
우리는 무슨 敵이든 敵을 갖고 있다
敵에는 가벼운 敵도 무거운 敵도 없다
지금의 敵이 제일 무거운 것 같고 무서울 것 같지만
이 敵이 없으면 또 다른 敵 來日
來日의 敵은 오늘의 敵보다 弱한지 몰라도
오늘의 敵도 來日의 敵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敵도 來日의 敵처럼 생각하면 되고
金洙暎의 < 敵 > 부분
3) 어휘적 애매성
하나의 소리에 여러 가지 의미가 결합되는 다의어, 두개 혹은 그 이상의 낱말이 소리를 같이하는 동음이의어와 구별될 때 나타나는 애매성입니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金洙暎의 < 눈 > 부분
눈(雪)과 눈(目)이 혼돈되고 있는 경우입니다. 눈(雪)으로 이해할 때 이는 곧 순백, 순결, 순수, 고요, 평화, 안락함 등으로 이미지가 나타날 것이고, 눈(目)으로 이해할 때는 비젼, 분별력, 판단력, 관찰, 감시등으로 이미지를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그 어느 것으로 이해해도 상관없는 것이어서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시에서 애매성을 극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기성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공감의 폭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해서는 애매한 표현이나 언어의 불투명성을 떨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투명성이 살아있는 작품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지난 사월 초파일
산사에 갔다가 해탈교를 건너며
나는 문득 해탈하고 싶어서
함께 간 여자를 버리고 왔다
그런데 왠지 자꾸만
그 여자 가엾은 생각이 들어
잠시 돌아다보니 그 여자는 어느새
얼굴에 주근깨 핀 산나리 되어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또
내가 사는 마을까지 따라와
가장 슬픈 한 마리 새가 되어
밤낮으로 소쩍소쩍
비워둔 내 가슴에 점을 찍었다
아무리 지워도 지울 수 없는
검붉은 문신처럼 서러운 점을.
任永祚의 <산나리꽃> 전문
위 작품은 여러 가지 비유가 있으면서도 그 선명한 메시지가 우리에게 쉽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사월 초파일이라면 붓다의 탄신일로서 누구나 불심을 가져 볼 수 있는 날입니다. 이 때 시적 화자는 절을 찾아갔고 불교가 추구하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인 해탈을 꿈꾸며 그 절에 있는 해탈교를 건너면서 어쩌면 자기 자신도 해탈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는 함께 간 여인을 버립니다. 이 여인은 아내라 해도 상관없고 그저 일반적인 여인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왜 여인을 버려야만 해탈이 되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그 시적 의도는 여자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온갖 욕망을 떨쳐버릴 수 없는 속세의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인을 버리고 돌아 왔지만 그 인연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것이어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그 여인은 산나리로 화해 나타납니다.
마을에까지 따라온 산나리는 다시 소쩍새가 되어 슬픈 소리로 울어댑니다. 그 울음은 해탈을 꿈꾸며 비워둔 마음에다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검붉은 점을 찍었습니다. 그 점은 바로 산나리꽃에 박혀 있는 바로 그 점이었던 것입니다.
‘여인- 산나리-소쩍새-검붉은 점’으로 변화하는 이미지는 산나리꽃을 본 이미지를 그대로 상승시키면서 이끌어낸 탁월한 비유입니다.
이렇듯 시는 투명한 이미지를 보여 줌으로서 그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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