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 창작강의 19
상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3
3. 상징적 행위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조명-프롬
에리히 프롬은 상징의 사회 심리학적 견해를 표명하며 보편적인 논의로 확산한다. 그는 상징에 대한 기존의 일반적인 개념에 저항한다. <어떤 다른 것을 대신한다>는 기존의 상징에 대한 견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상징적 표현을 요구하는 것은 표현의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흰 포도주의 맛과 붉은 포도주의 맛의 차이를 말해야 한다든가 어떤 황량한 정조를 전달하려고 할 때, 우리는 표현의 어려움을 만난다. 그러나 프롬은 어떤 밤의 꿈에서 <텅 빈 거리, 도시 변두리, 가난한 집들만 보이는 풍경 속에 서있는 한대의 우유차>를 보았다고 한다면 이러한 풍경은 어떤 황량한 정조를 표현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곧 정조의 상징이 된다.
강둑을 따라 걸어가면
바람나무와 물풀이 서로 어울려
키를 낮추고, 키를 높여가며
귓속말을 주고 받는다
산이 멀리서 이 광경을 보며
하품을 마악 끝내고 길게 눕는다
논 일을 끝낸 농부가
참을 머리에 이고오는 아내를 맞으러
둑 위에 올라서는 때 마침
구름 하나가 그늘을 만들며
강을 건넌다
독자 시 <정오> 전문
위 시는 전원의 평화롭고 아늑한 정조를 상징하고 있다. 그런 정조를 설명하는 것보다 표현함으로써 더 잘 나타낼 수가 있다. 따라서 프롬에 의하면 <단순한 대신함>이 아니라, <내적 경험, 감정, 사상을 대신하는 감각적 표현>이 바로 상징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상징적 언어란 내적 경험을 마치 감각적으로 경험되는 것처럼 표상하는 언어>이다. 바꾸어 말하면 외면적 세계가 내면적 세계를 표상하는 언어, 곧 인간의 영혼과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인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언제나 되풀이되듯이 <상징과 상징되는 대상 사이의 특수한 연결 관계는 무엇인가?>에 있다. 모든 상징의 논의는 이 기본적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 없다. 연결의 필연성 문제이다. 프롬은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세 가지 상징의 국면을 제시한다. 인습적 상징, 우연적 상징, 보편적 상징이다.
[1] 인습적 상징
인습적 상징이란 1)상징과 상징되는 대상 사이에 어떤 내재적 연관성도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책상>이란 말과 이 말이 지시하는 <대상으로서의 책상> 사이에는 어떤 필연성도 없다. 오직 인습적으로 우리는 그 상징을 수용한다. 2)어떤 상징은 그 상징과 감정 사이에 내재적 연관성을 갖는다. 이를테면 <후-->하는 소리는 어떤 사물을 밀어내는 의도를 표상하고 그 몸짓을 모방한다. 버크가 상징 논의의 기초로 삼는 논리이기도 하다. 3)인습적 상징으로 <국기>, <깃발>을 들 수 있다. 곧 어떤 회화는 오직 인습적으로 상징이 된다. 이러한 회화적 상징이 모두 인습적인 것은 아니다. 4) <십자가>는 기독교의 인습적 상징이지만 십자가의 특수 내용은 예수의 죽음, 또한 정신과 육체의 상호관련성까지를 의미한다. 단순한 인습을 초월하여 대상과 상징 사이에 연결관계가 놓이게 된다.
[2] 우연적 상징
한 인간이 어떤 도시에 대해 슬픈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그 도시 자체는 그 감정과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의 <이름>에서 그 사람은 슬픔을 연상한다. 한 도시에 대하여 인간이 꿈을 꾼다. 꿈속의 풍경이 어떤 감정을 표상한다. 그러나 실제로 꿈을 꿀 때 그 도시는 어떤 감정과도 무관했던 것이다. 우연적 상징이란 이렇게 상징이 상징되는 대상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를 우리의 감정과 연결시켜 수용케 하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 신화, 예술작품에 이러한 상징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은 작가가 스스로 사용하는 상징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하지 않는 한 교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꿈 속에서 우연적 상징은 자주 나타나고, 이 자주 나타남에 착안해서 우리는 상징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격포에 가면
파도가 달려와서 흐느끼는 해안
파선의 뼛조각들이 흩어져 있고
섬은 멀리 떠서 흐르지 않는다
격포 아니라도
바닷가에 서면 눈물이 난다
독자 시 <격포에서> 부분
위 시는 격포에서 일어난 해난사고를 염두에 두고 씌여진 것처럼 보인다. 격포 해난사고는 최근에 일어난 대형 사건으로 매우 우울한 기억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 그러기에 어느 바닷가에 가더라도 그 사고를 생각나게 만들기에 격포의 슬픔이 일방화 되어 바닷가가 슬픔의 현장으로 상징되게 된 것이며 격포는 눈물을 상징하는 지명처럼 된 것이다.
[3]보편적 상징
대상과 상징 사이에 내재적 연관관계가 언제나 있음으로써 이러한 상징은 보편적이다.
우연적 상징의 특수성, 개인에 비하면 보다 분명히 그 개념이 파악된다. 흔히 지적되듯이 <불>은 불에 대한 감각적 경험 속에 획득된 여러 요소들에 의해 그 내적 경험을 기술 할 때 상징으로 쓰일 수도 있다. 그것은 <힘> <광명> <움직임> <우아> <쾌활>등의 정조를 표상한다. 어떻게 하여 물질세계의 현상이 이렇게 인간의 내적 경험을 표상할 수 있는가. 곧 사물의 세계가 어떻게 심리세계의 상징이 될 수 있는가.
프롬은 우리의 신체들이 우리의 심리세계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피의 역류>라는 신체활동은 분노라는 심리세계를 상징한다. 그리하여 얼굴표정, 자세 등은 모두 어떤 정조를 표상하며, 행동과 몸짓은 감정을 표상한다.
나는 다리를 꺾고 앉는다
벤취는 말없이 나를 받고 있지만
나의 몸은 무겁기 그지없다
의자 앞에 놓인 키가 큰 나무
나무가 배가 고프다
어깨 뒤로 산이 빠져 나가고
발 끝에서 물이 흘러 나간다
나무 그늘도 의자에 앉는다
물빛을 바라보며 목이 마르고
산빛을 바라보며 배가 고프다
나는 의자에 길게 누워
흘러가는 구름 속으로 나를 보낸다
독자의 시 <나무> 전문
위 시에서 <의자에 앉는다>는 행위와 <길게 눕는다>는 두 행위는 다같이 배고픔을 상징한다. 그것을 나무에 빗대어 배고픔의 강도를 점점 더 높여 나간다. 그리고는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몽롱한 정신의 상태에까지 이르른 시적 화자의 내면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프롬에 의하면 <참으로 인간의 신체는 우화가 아니라 내면의 상징>이다. 따라서 <어떤 물질 현상은 바로 그 자체의 본질에 의해 정서적 전신적 경험을 암시하고, 우리는 정서적 경험을 물질적 경험의 언어로, 곧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결국 보편적 상징은 유일하게 상징과 대상의 관계가 우연적이 아니고 내재적인 상징이다. 그것은 <사상이나 정서의 감각적 경험이 나타내는 친화성에 근거>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적 언어는 인류 공통적이다.
그러나 모든 상징은 다양한 문화 속에서 문화 자체가 갖는 실제적 의미 때문에 그 의미가 다양해진다. 1)<상징적 방언>이 나타난다. 이를테면 <해>는 북방문화에서는 <곡식의 풍요> 동방문화에서는 <위험스러운 것>으로 이해된다. 2)상징은 다양한 경험의 차이에 따라 하나 이상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를테면 <불>은 가) 따뜻함, 기쁨, 활기(화로) 나)위험, 공포, 인간적 무력(화재) <물>은 가)평화(시냇물) 나)파괴력, 혼돈, 전율(홍수) <골짜기>는 가)안전, 보호 2)감옥, 유폐 등으로 판독된다. 이상 <상징적 방언>의 문제와 <문화적 다양성>의 문제는 상징해석에 반드시 유념해야할 사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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