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메주콩 삶는 날/고재종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1. 1. 3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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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콩 삶는 날/고재종

 


  하루 종일을 메주콩 삶는 날이라면 좋겠지요. 가마솥 가득
이글이글 장작불 메워, 너와 나는 날콩 내 나는 신경전도 삶았
으면 좋겠지요. 좀먹은 여투리콩 같은 나날도 삶고, 굵디굵은
눈물콩도 푹푹 삶았으면 좋겠지요. 한번 어긋나니 노상 빗나
가는 정분일랑은, 삶은 콩과 함께 절구에 찧고 찧어 철석같이
메주로 다지고, 서로의 가슴에 피던 세월의 곰팡일랑은, 주렁
주렁 메주 매달며 메주 잘 뜨기를 비는 데 넣겠지요. 그러고는
밤 되어 쩔쩔 끓는 아랫목에서 까짓것 등짝 좀 데면 어째, 엉덩
짝 좀 데면 어째, 마음마저 달구어져선 낮참에 치던 절구질 야
밤까지 치노라면, 어디선가 오우우 오우우 암여우 울음도 드
높겠지요. 그러다간, 그러다간, 아무래도 문창이 희끗희끗하
여선 화들짝 열어 젖히면 거기 함박눈이라도 펑펑 내리고, 그
러면 너와 나는 그 하던 것도 잊어버리고 마루 끝에, 토방에,
마당 가운데 내려서서는 모처럼 두 손으로 함박눈 받겠지요.
그날 새벽 필시 온누리는 숫눈발 눈부시겠지요. 그러면 명년
의 간장 된장이야 어찌 맛깔나게 우러나고도 남을 일 아니겠
어요.


<쪽빛 문장> 문학사상사
<하늘 연인> 열음사. 조명숙 엮음

 

 

 

문학에서 여성해방의 효시가 된 최초의 여성은 입센의 희곡에서 나오는 '노라'이고 최초로 계약결혼을 한 사람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보봐르이다. 보봐르가 쓴 <제 2의 성>은 법률, 제도, 풍습, 여론 등을 형성하며 여성운동을 한껏 고양시켰다. 이들의 영향으로 계약결혼이 사회현상으로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한때 우리나라도 영화로 문학으로 성행을 하면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계약결혼이 인스턴트식 사랑을 가져왔다고 딱히 말을 할 수는 없지만 페미니즘이 양성평등을 지향하고 있으니 그 영향이 컸다고 할 수는 있겠다. 장정일은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부제가 붙은 시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에서 소통의 매체가 아닌 일방적인 매체로서 켜고 싶을 때 켜고 끄고 싶을 때 언제든지 끌 수 있는 일회적이고 찰나적인  인스턴트식 사랑을 풍자했는데 요즘 대학생들의 떠오르는 연애로서 "데이트 메이트" 방식이 유행을 한다고 한다.

 

이 "데이트 메이트" 방식의 연애는 친구보다는 가깝지만 애인은 아닌 관계를 말한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는 등 여느 연인들과 다를 바 없이 데이트를 즐기며 자유로운 의사소통으로 고민상담도 하는데 스킨십은 단 키스까지라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종전의 인스턴트식 연애에 진일보한 한번 더 엎그레이드 된 연애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떠한 의무도 없이 자유롭게 마음 편하게 연애를 하면서 실연의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으니 퍽이나 홀가분한 연애같은데 아무런 전제가 없다고 해도 이성간의 만남이란 가로세로로 정이라는 담이 쌓이게 마련이다. 이렇게 만나다가 이별통고를 받으면 어떨까. 그것도 문자로 달랑 그만 만나자고 하면은.

 

그런데 젊은이들 사이에는 실제로 이렇게 이별을 문자로 통보를 한다고 한다. 인스턴트식 사랑이라 질질 끌 것도 없이 쿨한 이별이 좋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그것도 만나서 피치못할 변명이나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있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별똥별 떨어지듯 "그만 만나" 문자가 달랑 뜬다면 저으기 당황이 되고 기분은 적잖이 언잖을 것이다.

 

이런 인스턴트식의 사랑이 우리나라 이혼을 증가시키는데 얼마나 일조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결혼은 인스턴트식 사랑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어떤 제도적 관습에 묶이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메주콩을 쓰는 것처럼 신경전도 삶아보고 좀먹은 나날의 비루한 눈물도 삶아보고, 의견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는 성질머리도 뻣뻣한 배추 소금물로 죽이듯 푹푹 삶아서 죽여보고 내리는 눈도 넣어서 손발 맞춰 쿵더쿵 쿵더쿵 찧다 보면은 거룩하지 못한 한 생애도 그렇게 쉽게 다 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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