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 ‘포란의 계절’이 다른 시(강정애의 ‘새장’, 김후인의 ‘나무의 문’, 박해람의 ‘독설’ 등)를 명백하게 표절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어휘와 소재, 발상 등 여러 층위에서 ‘포란의 계절’과 관련 작품들 사이에 표절에 근접한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에 따라 ‘포란의 계절’이 등단작으로서 갖춰야 할 독창성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에 당선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가능성 있는 문학 신인의 앞날을 가로막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사자가 당선 취소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을 쓰는 것만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김미나씨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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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詩創作)의 독창성과 우연성
강인한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시를 쓰고 있는 김 아무개입니다. 글의 성격상 실명을 밝히지 않는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명색이 시를 쓴다는 사람이 다른 시인들의 작품에 문제를 제기하고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일은 인간적으로 미안하고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지만, 진정으로 시를 사랑하는 수많은 독자와 문단의 바람직한 풍토를 위해 망설이다가 글을 씁니다.
선생님, 다름이 아니오라 선생님 카페 ‘푸른 시의 방’ 손님방에 올리신 2011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포란의 계절’에 대해 어떤 분이 김후인의 ‘나무의 문‘과 비슷하다는 댓글을 달았고, 선생님께서도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따로 언급하셨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보다 훨씬 심각하고 혐의쩍은 점이 있는 것 같아 아래에 몇 작품을 소개할까 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제시하는 자료는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가 뒤늦게 표절 논란으로 취소된 강정애의 ‘새장’이란 작품을 비롯하여 모두 한 시인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람들의 시입니다. 특히 이 ‘새장’이란 시는 당시 서울신문 社告에도 나온 바와 같이 ‘2009년 정지용백일장’ 차상에 입상한 이슬의 ‘우산’이란 시와 너무도 흡사하여 충격을 주었던 작품입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수 없는 불미스런 현상들이 한 스승 아래서 자주 일어납니다. 이번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자 역시 같은 문하생임이 밝혀졌습니다. 시를 누구한테 배우든 누구의 영향을 받든 그것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부 얍삽한 시인들이 등단에 목말라하는 문학도들을 마치 입시과외 하듯 첨삭, 대필해주고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듭니다. 아울러 이름만 가리면 한 사람의 작품 같은 이러한 시들이 지속적으로 당선되는 것을 보면 심사자의 능력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선생님,
외람스럽지만 아래 시 몇 편을 살펴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이번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의 노란색 부분이 문제가 있어 보이는 부분입니다. 바로 옆 괄호 안은 타 시인의 작품을 옮겨온 것입니다.(아래 당해 작품에도 노란색 표시를 해두었습니다.*한글 파일을 여기에 옮기면서 노란색이 사라짐) 물론 시의 모티브나 주제까지는 논외로 치겠습니다. 어쩌면 저의 지적이 지나치다 싶은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방이냐 표절이냐를 떠나 최소한 작품의 독창성이나 순수성에 있어서만큼은 크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선생님의 고견은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늘 후학들을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께 정체불명의 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문단의 원로이신 선생님께서 올곧은 시 정신을 일깨워주기를 바라는 마음 외에는 아무런 사심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기다리겠습니다.
포란의 계절 / 김미나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흔들리는 집을 짓는 것들은(흔들리는 푸른 것들은) 날개들뿐이다. 새들의 건축법에는 면적을 재는 기준이 직선에 있다고 나와 있다. 직선은 흔들리는 골재를 갖고 있다. 문 없는 집,(나무는 어디가 문일까) 계단 없는 집, 지붕이 없는 집,(지붕 없는 새의 빈 집) 없는 게 너무 많아 그 집을 탐하는 것들도 별로 없다.
미루나무에 빈집 몇 채 얹혀 있다. 층층을 골라 다세대 주택 같다.(허공에도 층층이 있어,) 포란의 계절에만 공중의 집(공중의 거처)에 전세를 드는 새들, 알들이 아랫목처럼 따뜻할 것 같다. 아궁이에선 초록의 연기가 피어 오르고(초록의 연기가다 빠져 나가고) 어둠을 끌어다 덮으면 아랫목에서 날개가 파닥일 것 같다.
공중 집을 보면 새들의 작고 뾰죽한 부리가(새의 혀들, 부리를 묻고 있는) 생각난다. 날개에 붙어 있는 공중의 주소,(공중의 거처) 셀 수 없는 바람의 잔가지들이 엉켜 있어 수시로 드나드는 바람엔 개의치 않는다. 양 날개에 바람을 차고 나뭇가지를 나르던 가설의 건축.
쌀쌀한 날씨에 군불처럼 둥지에 앉아 있는 새들.(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 )
불안한 울음이 가득한(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포란의 집. 짹짹거리는 소리가 나뭇가지를 옮겨 다닌다. 직선의 면적에(직선의 평수 안) 둥근 방. 문고리가 없다.
이제 소란한 공중은 새들의 소유다. (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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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 강정애 <2011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취소작>
나무 밑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
누군가 한 번쯤 신었던 흔적이 있다
낡은 그늘과 구겨진 울음소리가 들어있는 이파리들
나무 한 그루를 데우기 위해
붉은 온도를 가졌던 모습이다
저녁의 노을이 모여드는 한 그루 단풍나무 새장
새들이 단풍나무에 가득 들어 있는 저녁 무렵
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
후렴은 땅에 버리는 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한 그루 새장이 걸려 있다
먼 곳을 날아와 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
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직선의 평수 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들
모든 소리를 다 비운 새들이 날아가는
열려 있으면서 또한 무성하게 닫혀 있는 새장
허공의 바람자물통이 달려 있는 저 집의
왁자한 방들
잎의 계절이 다 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
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
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
모두 그늘을 접는 계절
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
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간다
한 그루 단풍나무가 제 가슴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저녁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의 귀
누군가 새들의 신발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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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문 / 김후인 <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취소작>
몇 층의 구름이 바람을 몰고간다
그 몇 층 사이의 긴 장마와
연기가 접혀 있을 것 같다
바람의 층 사이에 머무르는 種들이 많다
發芽라는 말 옆에 온갖 씨앗을 묻어 둔다
여름, 후드득 소리 나는 것들을 씨앗이라고 말해본다
나는 조용히 입 열고
씨앗을 뱉어낸 최초의 울음이었다
오래 된 떡갈나무 창고 옆에
나뭇가지 같은 방 하나 들였다
나무에 걸린 바람을 들여놓고 싶었다
지붕이 비었을 때엔 빗소리가 크다
빈 아궁이에 솔가지 불을 밀어 넣으면
물이 날아올랐다
물기를 머금고 사는 것들이
방안을 채울 줄 알았다
아궁이 앞에서 뜨거운 울음의 족보를 본다
실어 온 씨앗으로 바람은 키 작은 뽕나무를 키웠다
초여름, 초록이 타고 푸른 연기가 날아오르고
까만 오디가 달렸다
문을 세웠더니 바깥이 들어와
빈 방이 되었다
바람의 어느 층이 키운 나무들은 흰 연기를 품고 있다
어제는 나무의 안쪽이 자라고 오늘
나무의 바깥이 자랐다
나무는 어디가 문일까
문을 열어 놓은 나무들 마다
초록의 연기가
다 빠져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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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 / 박해람 <2008 현대문학 발표, 경운서당 운영>
-전략-
너는 왜
몸밖에 없는 것들에게 왜
문을 열어주었던 것이냐
아무리 흔들려도 저 木家의 밖은
멀리 떠나지 않고
흔들리는 푸른 것들은 바람의 고삐에 묶여 있다
고삐는 가고 깊은 곳으로 팽팽하다
바람의 고삐에 가끔 몸이 휘어지지만
결국 끌려가지 못하고 버티는 나무의 머리채가 떨구는
그악스런 독설들
-후략-
독설-2
-전략-
허공에도 층층이 있어 저마다 듣는 바람의 소리에 높이가 있다
땅에 내려놓은 半身은
멀리서의 으스스함을 먼저 알아차린다
개미는 아침을 건너 비를 피했으며
독설이 생기기 전 마른 잎에는 그 어떤 침도 고이지 않았다
모든 선험은 독설의 후렴
제각각 후미가 있듯
나는 내 말의 후미를 바라본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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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시는 2011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강정애의 ‘새장’이 당선 취소된 근거로 제시된 시입니다.
강정애, 김후인, 이슬, 김미나 모두 박해람 시인이 운영하는 ‘경운서당’ 동문수학자들입니다.
우산 / 이슬 <2009 정지용백일장 차상 당선작>
모든 것들은 제 무게만큼의 그늘을 키우며 산다
잎 넓은 오동나무 밑으로 비를 피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나무들은 방수의 그늘이 있다
활짝 우산이 펼쳐지듯 잎을 피워낸 그늘 밑으로
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잎의 넓이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살구처럼 떨어지는 소리들
새들이 비를 피해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모든 소리를 다 비우고서야
새들이 우산 밖으로 후드득 날아간다
잎의 계절이 다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
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
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이
소란스럽게 돋아날 준비를 할 것이다
몇 번의 여우비와 몇 번의 소나기가 다녀갈 것이고
그러는 사이 몇 개의 우산살은 부러질지도 모른다
자동으로 펴졌다 접히는 우산
모두 그늘을 다 접는 계절이 오면
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
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갈 것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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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poemory(푸른 시의 방)에서[알림] 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포란의 계절’ 당선 취소
[중앙일보] 입력 2011.11.18 00:11
그 결과 ‘포란의 계절’이 다른 시(강정애의 ‘새장’, 김후인의 ‘나무의 문’, 박해람의 ‘독설’ 등)를 명백하게 표절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어휘와 소재, 발상 등 여러 층위에서 ‘포란의 계절’과 관련 작품들 사이에 표절에 근접한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에 따라 ‘포란의 계절’이 등단작으로서 갖춰야 할 독창성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에 당선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가능성 있는 문학 신인의 앞날을 가로막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사자가 당선 취소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을 쓰는 것만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김미나씨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