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에게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멀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벼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남은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시집『땅의 연가』(창장과비평사, 1981)
2012-01-11 / 수요일, 오전 10시 00분
<시 속에 단어>
노둣돌-말을 타거나 내릴 때에 발돋움으로 쓰려고 대문 앞에 놓은 큰 돌. 승맛돌. 하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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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염원의 노래 직녀에게
<직녀에게>라는 나의 통일염원을 읊은 서정시는 70년대 중반쯤 <심상>이라는 시 전문지에 발표한 작품으로 1981년 창비사에서 간행된 <땅의 戀歌>란 시선집에 실려 있다. 이 시가 노래로 작곡되어 불리워진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80년 5월 이후 검거망을 피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윤한봉의 청탁에 의해 같이 활동하던 작곡가 김형성씨가 통일염원의 노래로 작곡을 하였고 그 노래는 미주와 유럽등지에서 해외동포에 의해 불리워지게 되었다.
내가 84년 제 3세계 예술제가 열리는 서독 베를린에 들렀다가 거기서 뜻있는 해외동포로부터 이 노래의 악보와 육성으로 부른 테잎을 가지고 왔다. 나는 이 노래가 국내에서도 불리워지기를 바라고 당시 전남사대 영문과를 나왔으나 딴따라 기질이 있어 방송계로 진출한 애제자 오창규군에게 건네어 주었다.
오창규는 그것을 다시 역시 교단을 버리고 통기타의 반려자가 된 노래꾼 박문옥에 건네었다. 해외에서 부르는 노래가 가곡풍인데다 국내의 정서와 맞지 않다고 판단, 일면 작곡에 대한 야심도 있었던지, 그 동일 가사에다 다른 곡을 붙였다.
그리하여 새로 탄생한 민중가요 <직녀에게>는 당시 <바위섬>이라는 노래로 한창 방송가의 인기를 타고 있던 신선한 목소리의 대학생 가수 김원중을 만나 음반으로 취입되었다.
그 노래는 서서이 반향을 일으켜 <바위섬>의 여운을 이어받는 듯했으나 작사자인 내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반체제 운운하는 원동권 재야 세력 탓인지 방송가의 전파에서 조금씩 밀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김원중의 열창과 더불어 이 땅의 모든 현장에서 민중가수의 상징적 애창곡이 되어 이 시대의 대표적 통일염원 노래로 사랑을 받았다.
분단 반세기를 넘긴 이 시점에서 김원중의 <직녀에게>는 남북한 구석구석까지 울려퍼져 이 땅의 통일을 앞당겨올 것이며,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그의 절규는 온 누리에 메아리칠 것이다.
문병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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