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이 만난사람] 소리인생 75년…‘배뱅이굿’ 무형문화재 이은관 옹
“5년 후 100살이지만 ‘펄펄’…매달 4~5회 무대 서잖아요”
거침이 없다. 결코 쉬는 일도 없다. 남성의 바리톤 같은 저음에서 여성의 소프라노 목소리까지 시공을 뛰어넘으며 우리 가락을 잘도 버무려 낸다. 때로는 웃음과 슬픔, 때로는 깊은 곳에 묻혀진 회한을 꺼내 달래고 어루만진다. 희로애락, 그 가슴을 후벼파고 쥐어짜기도 한다.
95살, 5년 후에는 100살이 된다. 서도소리 명인 이은관(중요무형문화재 29호)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배뱅이굿’을 가장 잘 부른다. 현재까지 ‘배뱅이굿’에 관한 한 그를 따를 자가 없는 명창이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제자를 가르치고 매달 4~5회씩 공연을 하는 등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 주변에 위치한 ‘이은관 민요교실’을 찾았다. 이 선생은 제자 전옥희(배뱅이굿 이수자)씨와 함께 앉아 다음 공연에 대해 얘기하다가 “내가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 일어서지 못해 미안하다.”며 앉은 채로 반긴다.
빨간 티셔츠에 짙은 회색 상의 차림이어서 그런지 한복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다.
“오늘은 한복을 집에 두고 왔으니 뭐 어때. 이런 모습도 좋지 않아요?”라며 사진 촬영에 응했다.
대신 장구를 잡더니 공연 때 하는 것처럼 배뱅이굿 중 한토막을 즉석에서 흥겹게 읊어댄다.
|
▲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 인근의 ‘이은관 민요교실’에서 만난 이은관 선생이 모처럼 평상복 차림으로 자신의 소리인생을 회고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
“옛날 서울 장안에 이 정승 김 정승 최 정승 삼 정승이 재산은 많으나 아들 딸이 없어서 명산 대찰에 불공을 드려서 아들 딸 좀 낳아 보겠다고 삼 부인 삼 정승이 명산 대찰을 찾아가는데 삼 부인이 그냥 매일같이 아들 딸 낳게 해 달라고 빌고 정성을 드렸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삼 부인이 아마 그달부터 뱃속에 뭐 하나씩 생겼던가 봐요. 하루는 말이요. 삼 부인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서 꿈 야기판이 벌어졌어요. 제일 먼저 이 정승 부인께서 한마디 해보이는데 아이고 난 저번에 꿈을 꾸었는데 그저 꿈에 하얀 백발 노인이 머리달비 한쌍을 주길래 그 달비 받아서 치마폭에다 배배 틀어연 꿈을 꾸었는데 어찌 그런지 요즘은 그저 머리가 자끈자끈 아픈게 그저 시큼털털한 개살구나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어~”
이 선생은 “이제 그만 됐습니다.”라고 할 때까지 한 호흡도 쉬지 않고 계속 이어나간다. 10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도대체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여 건강에 대한 얘기부터 나왔다. 이 선생의 웃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해맑고 환하다. 그 자체만 해도 건강 유지 방법 중 하나이다.
“나 말이오? 건강하죠. 그러니까 이때까장 노래부르잖아요. 전화 목소리는 잘 안들리고 가끔 다리가 아파서 걷는 것을 조심하고 있어요.”
병원에 입원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다만 건강검진을 위해 3일 정도 입원한 적이 있다고 옆에 있던 제자가 거들었다. 그렇다면 75년의 소리인생을 살아오면서 지금도 무대를 휘어잡는 진짜 건강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말이에요. 생활이 규칙적이죠. 식사를 하루에 다섯 번 해요. 먹고 싶을 때 조금씩 다섯 번을 먹는 습관이 있어요. 소식이지요. 하루 세 끼가 아니라 다섯 끼이기 때문에 혼자서 해먹지요. 기본 반찬은 며느리가 갖다 주는데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동네 슈퍼에 가서 미리 사놨다가 혼자 요리를 해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선생의 자택은 서울 황학동이다. 사업을 하는 아들 부부가 2층에서 살고 이 선생은 아래층에 혼자 산다. 주로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원래 고기를 좋아해요. 소고기도 좋아하는데 돼지고기 사다가 김치에다 라면을 넣고 끓여 먹으면 아주 맛있어요. 그래저래 고기는 한 달에 20일 이상 먹는 편이지. 소식으로 여러 번 먹고, 또 고기를 자주 먹는 그런 습관이 30년이 넘었어요. 요즘에는 잠을 잘 자요. 낮이건 밤이건 자고 싶을 때 1시간이나 3시간씩 여러 번 잠을 자요. 밤에 자다가 일어나 출출하면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도 해 먹고 다시 자고 아주 편해요. 잠이 안 오면 악보 그리고 작사하고, 심심할 시간이 전혀 없어요(웃음).”
그는 지금도 작사 작곡을 한다.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는 자작곡(신민요와 민속민요)만 100여편에 이른다. 또 색소폰, 전자오르간, 아코디언 등 서양악기는 물론이고 피리, 가야금 등 대부분의 국악기도 다룬다. 이 선생의 말대로 ‘심심할 틈’이 도저히 없다.
올해는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 선생은 “나는 잘 몰라요. 우리 제자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한다. 옆에 있던 제자 전씨가 얼른 얘기한다.
“10월 9일 소월아트홀(서울 행당동)에서 공연이 있어요. 제자들과 함께하는 무대이지요. 그리고 10월 16일 밀양에서 있고, 연말까지 10회 정도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선생님(이은관)의 열정은 정말 대단해요. 지금도 한 달에 큰 행사만 2~3회 정도 합니다.”
화제를 옛날 얘기로 돌렸다. 어떻게 소리를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이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신불출(만담가이자 연극인)의 ‘대머리 영감’이나 ‘엉터리’, ‘견우직녀’, ‘홍길동’ 같은 ‘유성기’를 동네 사랑방에서 어른들과 함께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농부였던 부친이 노래를 잘 불렀다고 회고한다.
“아버님 따라 밭에도 가고 산에도 갔지요. 그때마다 아버님이 ‘나무하러 가세 나무하러 가세, 상상 마루에 올라가세’ 하는 산타령을 지게 작대기로 장단을 맞추면서 아주 잘 불렀어요. 내가 그걸 따라 부를 때마다 흥이 납디다. 아마 내 노래 소질은 아버님을 닮은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 배운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라는 창가,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 등의 동요를 불러 학예회에서 우등상을 받기도 했다. 17살 때 강원도 철원극장에서 콩쿠르가 열렸다.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 출전해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를 불러 일등상을 받았다.
“그때 상을 받는 바람에 얼씨구나 하고 좋아했지요. 이젠 노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갔어요. 왜냐하면 서울에는 방송국도 있고, 서울에 가면 출세하는 줄 알았지요. 결국 어떻게 해서 경성방송국에 출연했어요. 그게 소문이 나서 더욱 우쭐했지 뭡니까. 고향에 다시 갔더니 여기저기에서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하지만 그는 노래실력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수소문 끝에 황해도 황주에 있는 이인수 명창에게 찾아가 배뱅이굿과 서도소리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는 “3개월 동안 스승님 집에서 먹고 자고 하며 노래를 배웠는데 아주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셨다.”면서 “재담이 아주 길고 다양하셨다.”고 술회한다. 이후 이 선생은 서울로 다시 와 조선가무단에서 유랑극단 생활을 했다. 이때 특유의 높고 고운 소리의 구성진 창법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957년 양주남 감독의 영화 ‘배뱅이굿’에 출연해 배뱅이굿 1인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 배뱅이굿은 굿이 아니라고 이 선생은 강조한다. 남도의 판소리처럼 소리꾼이 장구 반주에 맞춰 배뱅이 이야기를 서도소리로 풀어내는 1인 창극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탁발 나온 상좌중과 사랑에 빠진 정승의 딸 배뱅이가 상사병을 앓다 죽자 부모가 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팔도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데 건달 청년이 거짓 무당 행세로 횡재한다는 줄거리다. ‘배뱅이굿’은 경쾌하고 장조가 많은 특징이 있으며 이 선생이 이런 장단을 처음으로 정립했다.1984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는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16살 차이 나는 맏딸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 가족 얘기가 나오자 잠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학교 시절이었지요. 하루는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해서 선을 보러 말타고 20리를 갔습니다. 얼굴도 제대로 못봤는데 방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신부 목소리가 아주 곱더군요. 아이 셋 낳고 먼저 갔습니다. 내가 자식들 공부를 제대로 못 시켰어요. 그게 한이 됐지요. 출세하려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고 나중에 돈이 생기니까 ‘공부값’으로 자식들한데 얼마씩 주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매년 초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난다. 증손자까지 모두 20여명이라며 웃는다. 다복하지 않으냐는 표정이다. 인간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꿈이 있기 마련이다.
“5년만 있으면 100살입니다. 남은 인생 잘 마무리해야지요. 뒤돌아보면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고 먼저 세상을 떠난 처가 생각납니다. 내가 제자를 많이 받아들이는 것도 그런 한이 있어서 그래요. 정신이 또렷할 때까지 열심히 가르치고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제자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민속악도 그냥 소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보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일어섰더니 “추석 잘 보내시고 일어나지 못해 미안해요.”라며 파안대소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이은관 옹은 고교시절 마을 콩쿠르서 1등 후 소리공부…‘배뱅이굿’은 이인수 명창에게 배워 1917년 11월 27일 강원도 이천에서 8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나온 뒤 철원고등학교 시절 마을 콩쿠르대회에 나가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를 불러 1등을 차지했다.
|
▲ 인터뷰 도중 이은관 선생이 제자인 배뱅이굿 이수자 전옥희(오른쪽)씨와 함께 잠시 포즈를 취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과 황해도를 오가며 본격적인 소리공부를 했다. 14살 때 4살 연상과 결혼했지만 떠돌이생활로 소리인생을 시작했다.
‘배뱅이굿’과 ‘서도명창’은 황해도 황주에서 스승 이인수 명창에게 배웠다. 1957년 양주남 감독의 영화 ‘배뱅이굿’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1984년 배뱅이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29호로 지정받았다.
2002년 제9회 방일영국악상, 1990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지금도 한 달 평균 큰 행사만 2~3회를 치를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슬하에 6남매를 두었으며 서울 황학동에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다.
배뱅이 굿 -完唱 (이은관)
배뱅이굿
9반2조(6,7,8,9,10)
배우 한 사람이 등장하여 여러 사람의 역을 도맡아서 창(唱)을 불러
새신초혼(賽神招魂)하는 서도(西道) 지방의 연극적인 굿놀이.
조선시대 영조 ·정조 이래 구전된 것을 한말에 평남 용강의 김관준(金官俊)이 개작하여 아들 종조(宗朝)가 계승하였다. 김종조의 동료인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등이 부르면서부터 널리 전파되었다. 구성은 황해도 소리가 중심이 되나, 경기 ·강원 ·함경의 민요 · 잡가 등을 사이사이에 넣어가며 남도 판소리의 ‘아니리’를 본받아 창자(唱者) 한 사람이 주고받고 설명한다. 오늘날 부르는 것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훨씬 이후의 것으로 추측되는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숙종 때에 경상도 태백산 아래 9대째 내려오는 무당 최씨라는 부자가 살았다. 어느 해 나라에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과거를 보였으므로, 그도 이에 응시하여 급제하고 경상 감사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부임 얼마 후 무당임이 탄로나 쫓겨나고, 황해도로 가서 최정승으로 행세하며 그곳에 사는 김, 이 두 정승과 형제의 의를 맺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모두 혈육이 없었다. 어느 날 세 사람은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하여 각각 딸 하나씩을 낳았는데, 최정승은 딸의 이름을 ‘백의 백갑절’이라는 뜻으로 ‘배뱅[百百]이’라고 지었다.
이 셋은 어느덧 자라서 처녀가 되었다. 하루는 금강산 어느 절에서 나온 탁발승이 최정승 집에 왔는데, 배뱅이는 그 중에게 첫눈에 반하여 그를 불러들여서 벽장에 숨겨두고 함께 지냈다. 중은 머리를 기른 뒤 오겠다고 기약하고 떠난 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중을 기다리다 지친 배뱅이는 끝내 상사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최정승 내외는 딸 배뱅이의 넋이나마 불러보고 싶어 이를 이루어주는 사람에게는 재산의 절반을 나눠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팔도의 이름난 무당들이 몰려들어 굿을 하였으나, 아무도 넋을 불러오지 못하였다. 그 때 지나가던 평양의 젊은 건달 부랑자가 무당 행세를 하여 넋을 불러들여 주었으므로, 최정승은 그에게 약속을 지켜 재산의 절반을 주었다는 것이다.
극의 구성은 산천기도 ·현몽 ·배뱅이의 출생 ·성장 ·연애 ·배뱅이의 죽음 ·장사 ·무당의 굿 ·주막집 ·배뱅이의 마지막 굿날 ·귀로 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배 뱅 이 굿 [배뱅이 혼령 위로 굿 대목]
①새신초혼(賽神招魂):귀신을 막고 혼을 불러오는 것
詞 :
이렇게 배뱅이를 북망산천에 갔다 깊이깊이 묻어 놓고 집에 돌아와 배뱅이 부모님은 눈물과 근심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하루는 두 늙은이가 하는 말이
(자 - 우리 재산 두어 두면 무엇에 쓰겠소 배뱅이 하나 죽었으니 우리 각 도 부당들이나 불러서 배뱅이 죽은 넋이라도 한번 더 들어 봅시다)
이렇게 굿을 하기로 의논을 하고나서 굿한다고 광고를 냇더니 무당들이 모여 드는데 오천 칠백 일흔 두명이 모여 들었단 말이야요.
배뱅이 아버지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이 여러 무당들이 다 굿을 했다가는 있는 재산이 아무리 많다 해도 굿하고 나서 거지가 될 판이야요 그래서 그 동중에 제일 부질부질하고 싸움 잘 하는 청년 하나를 불러 가지고.
(이 여러 무당들이 굿을 하는데 그 무당 중에서 굿을 잘하는 무당이면 주어 주고 잘 못하는 무당이면 당장 네가 내쫓아라)
이렇게 무당 점고를 하는데 제일 어린 황해도 무당이나 저 평양 무당이 한마디 해 보겠다.
唱 :
나무아미 타불이로다
詞 :
가만히 보니까 무당이 너무 점잖게 한단 말씀이야요
(그 무슨 굿이 그렇게 점잖어요 굿을 할랴면 말예요 이렇게 점잖게 해야지)
唱 :
어 - 에야 오늘이야 가을이면 봄 보자 봄이면 가을 보자 어 - 어야 괘심 하구나.
詞 :
(아 이렇게 해야지 아주 너무 점잖아서 틀렸어요 나가요)
이 무당은 그만 점잖게 했다고 쫓겨 나갔지요.
다음 무당은 점잖은 부당이 쫓겨 나갔으니 나는 들어 가서 한번 까불면 괜찮을 것 같아서 한번 까불어 보는데.
唱 :
나무아미타불이로다.
온다고 하기도 제면쩍고 간다고 하기도 부끄럽소 나무아미 타 - 불이라 요렇게 왔다 조렇게 갈걸 낸들 당초 왜 왔던가 나무아미 타 - 불이라.
詞 :
여보 당신 너무 까불어 틀렸어 나가요
(내 글럴 줄 알았죠)
이렇게 그만 까불다 쫓겨 나갔죠.
다음 무당은 저 황해도 해주 무당인데 보혈 굿을 한마디해 보는데
唱 :
보혈야요 보혈야요 가망마노라 보혈야요
높은 남게 황실래요 얕은 남게 청실래요 황밤 대추 시실과는 제후지신의 차지로다.
보혈야요 보혈야요가망마노라 보혈야요.
詞 :
아니 배뱅이 혼이 와야지 보혈이만 찾으면 되나요 나가요 또 쫓겨 나갔죠.
요다음 무당은 강원도 두뫼 산골 무당이 한마디 하는데.
唱 :
에라 임금 만세라 에라 임금 만세라 오늘날에 오늘날에 원하는 금일 원하는 금일 사바세계 사바세계 남섬부주 남섬부주 해동제일 우리 나라 에라 임금 만세라 에라 임금 만세라 오늘날에 이댁 가충 금년신수가 대통할 제 에라 임금 만세라 에라 임금 만세라
詞 :
이 무당 또 쫓겨 나갔죠 다음 무당은 서울 무당이 서울 굿을 하는데.
(무당공수) 에 - 어구자 아주 제길 할 것 하위동방 굽어 보니 뿌연 막걸리 한잔 없고 원산 말뚝 하나 없고 쓸쓸하구나 에 그렇지만 우리 대감이
唱 :
멋이 멋대로 뚝 떨어져서 우리 대감이 내려를 왔네 우리 대감이 내려와서 은산에 가서 은을 지고 금산에 가서 금을 지고 업어 드리고 져드려라 재수소망을 섬겨주마 덩기 덩기 덩덩 덩더쿵아 쳐라 얼사.
詞 :
이렇게 여러 무당들이 굿을 해도 배뱅이 혼이 도무지 아니 와서 배뱅이 부모님은 안방에서 병이 나 누워 있으면서 굿청에는 내다 보지도 않고 속을 태우고 있을 적에,
이때 마침 저 - 평양의 어떤 한 재산가의 아들로 재산은 기생 놓음에 다 털어 먹은 건달 친구 하나가 노자냥이나 가지고 강산유람차로 떠났다가 마침 온다는 것이 배뱅이 굿하는 동리를 우연히 당도하여 어느 주막거리에 앉아서 한 쪽을 바라보니까 조그마한 오막살이 막걸리 집이 있단 말이야요.
그런데 이 간달 친구 돈냥이나 가지고 떠났던 것은 다 없어지고 배는 고픈데 야단 났어요.
에라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니 들어가 한 잔 달래 먹고서 나중에 경을치든가 어떻게 할 작정으로 찾아 들어갔죠.
(건 달)
[여보 할머니 집에 계십니까?]
(할머니)
[아이고 그 누구요?]
(건 달)
[할머니 그 술 한잔 주소고레]
(할머니)
[아 - 그래요]
詞 :
술 한 잔 갔다 주었지요. 바가지로 갔다 주니까 건달 여석이 한 모금에 쭉 - 마시고 보니까 범 모기 잡아 먹은 것 같고 고래 건지 잡아 먹은 것 같아 더먹고 싶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이 때 마침 사방을 둘러보니까 아무도 없어요 에라 강제로 좀 더 뺏어 먹을 작정으로,
(건 달)
[할머니]
(할머니)[왜 그러나]
(건 달)
[지금 먹은 술 외상인데 외상에 몇 잔 더 주소고레]
(할머니)
[아니 뭐 외상? 외상 요런놈 보아라 요런 장내 부자가 되어 늙어 죽을 놈 같으니 아니 술 외상 외상?]
(건 달)
[아이 할머니 술 와상 안주겠어? 외상 안주면 재미없어]
(할머니)
[아이구 얘야 다 먹어라 다 먹어 다 먹어 고놈의 눈에 핏줄이 왔다 갔다하는 게 아무 때라도 사람 잡아 먹고 피똥 쌀놈의 자식이로구나]하니까.
詞 :
이 건달 친구가 막걸리를 동이째 들이마시고서 한참 술 주정을 해 보는데
[할머니야 세상이 이게 다 뭐요 한 잔 먹고 보니까 이게 다 경우가 있어야 되는 법이야 에 ~ 에 끽
사람이 말이야 한 잔 먹을 때는 먹고 놀고 춤 출때는 춤을 추고 할머니 응]
이렇게 한참 주정을 하다가 보니까 뒷 동리 큰 기와집에서 아 - 북 치고 장구 치고 야단 법석 하는 소리가 나단 말씀이야.
(건 달)
[할머니 저 동리에서 왜 저렇게]
(할머니)
[야 이 자식아 난 그 이야기만해도 눈물부터 난다 그 집으로 말하면 서울 장안에 이 정승 김 정승 최 정승이 명산에 기도 하여 앞집에 세월네 뒷집에 네월네 가운데집 배뱅이를 낳았는데 세월네 네월네는 시집을 가서 아들 딸 낳고 잘 사는데 가운데ㅅ 집 배뱅이는 늦도록 시집을 못 가고 있다가 좋은 가중에 약손해 놓고 예장 혼수 비단 까지 받아 놓고 그만 배뱅이가 죽었단다. 불쌍히 죽었지 불쌍히 죽었어 엉엉 어...엉]
(건 달)
[할머니 그 뭇엇을 그렇게 울어요 예장 받아 둔 것 이런 것 다 잘알아요]
(할머니)
[얘 배뱅이가 예장 받아 둔 비단이 여러 가지다]
(건 달)
[무엇 무었입니까]
(할머니)
[얘 이렇게 여러 가지야 달이 돋아 월광단 해가 돋아 일광단 길주 명천 회령주 명주 세필 삼동주 흑공단 목공단 만수청산 운무단 제갈공명 와룡단 연안자주 흰자주 해주자주 남자주 이렇게 여러 가지이고 또 그 옥양목 버선이 백 켤레나 된단다]
(건 달)
[할머니 그뿐이던가요]
(할머니)
[왜 그뿐이겠나 배뱅이가 세살 적에 배뱅이 할아버지가 배뱅이 귀엽다고 나가 놀면 나가 놀라고 한 푼 주고, 들어와 놀라고 한 푼 주고 울면 울지 말라고 한 푼 주고 잘 놀면 잘 논다고 한 푼 주신 노랑 돈 아흔 아홉 냥 일곱 돈 칠푼 오 리 꼭 꼭 묶어서 종털바구니 속에 넣어 두고 죽었단다 불쌍히 죽었어 불쌍히...
얘 너 지금 소리 깨나 할 줄 아니 그럼 말이야 그 집에 가서 굿 해 가지구 돈벌어서 올 때에 내 술값이나 좀 갚아라 응 - ]
(건 달)
[할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내 술값은 오다가 갚아 드릴께요.]
詞 :
이 건달 청년 그 소리를 할머니에게 다 알았으니까 빨리 배뱅이네집을 찾아가서.
(건 달)
[여보시오 거 나 굿 한거리 합시다]했더니
詞 :
그 집에 있는 여자 무당들이 박수 무당이라고 영 굿을 시켜 주지를 않아요 이 건달 청년이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배뱅이 내력을 술집 할머니한테 다 알았으니 무당 소리나 한 마디 잘하고 호통을 한 마디치면 굿 한 거리 하라고 할 것 같아서 굿청으로 뛰어 올라가면서 평양 무당 소리를 한 마디 해 보는데
唱 :
에 ~ 에 ~ 에 ~ 어이 어 ~ 이
어떠한 무당이며 어떠한 성신이 온줄 알았더냐 앞다리 선각에 뒷다리 후각에 양지머리 칼 꽂고 줄 풍류 가락에 놀던 무당이 왔다고 여쭈어라
詞 :
이때에 여자 무당들이 가만히 보니까 정말 무당이란 말이야요 그래 한 여자 무당이 나와 비는데
唱 :
쇠 술로 화식 먹는 인간이 모르는 건 많고 아는 것 없사와 신장님 오시는 길에 길맞이 못한 것을 용서 하여 주옵소서
詞 :
나오며 비는 걸 보니까 되기는 될 모양이란 말이야요 그래서 이 건달 친구가 또 한 마디 대답을 해 보는데
唱 :
너희가 정 그렇다면 장삼 고깔 부채나 한 벌 내다 주면 내 성수대로 한 거리 놀고 가겠노라.
詞 :
고깔 장삼을 내다 주니까 이 건달 친구 고깔 쓰고 장삼을 입고 나니 그럴 듯한 무당이 되었단 말이야요.
자 - 그런데 이제 부터 배뱅이 혼이 왔다고 한 마디 해야 될 모양인데 배뱅이 혼이 왔다고하면 첫째 배뱅이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 내야 배뱅이 혼이 왔다는 표시가 되겠는데 여러 구경꾼 가운데 어느게 배뱅이 어머니 아버지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이 청년 슬적 수단을 한번 꾸며 보는데 배뱅이 혼이 왔다고 한번설게 울면 그 중에 제일 설게 우는 사람이 있으면 눈치 봐서 가서 부여잡고 사정을 해 볼 작정으로 배뱅이 혼이 왔다고 이렇게 우는데
唱 :
왔구나 왔소이다 왔소이다 불상히 죽어서 황천 갔던 배뱅이 혼신이 평양 사는 박수무당의 몸을 빌고 입을 빌어 오늘에야 오늘에야 왔소이다 오마니 오마니 우리 오마니는 어디 가고서 딸 자식 배뱅이가 왔다고 하는데도 모른 체하나요 살았을 적 같으면 내가 어디를 갔다 온다면 우리 오마니가 나를 보고서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화다닥 뛰어서 나오련만 죽어지고서 길 갈라서니까 쓸 곳이 없구려 오면은 온 줄 얼며 가면은 간 줄 아나 오만지 오마니 어디갔소 오마니 으흐.....응......
詞 :
때마침 함경도집 할머니가 와서 있다가 하는 말이
(함경도집 할머니)
[왔대이 왔대이 네 무시기 왔대이 배뱅이 혼이 왔거들랑 하고 싶은 말 다 하고서 가겠지비야]
詞 :
말씨를 듣고 보니까 사투리가 함경도 사투리야요(오 요것은 배뱅이 어머니가 아니로구나) 눈치를 채고 또 한마디 해 보는데.
唱 :
우리 오마니는 어디를 가고 함경도집 할머니가 나오시나요 함경도집 할머니 그지간 기체후 일향만강 하옵니까 나는 죽어서 육신은 북망산천에 깊이 깊이 묻혔건만 영혼이야 죽었으며 나자든 침방이야 변했겠소.
내가 시집가려고 할 적에 박아 둔 비단 달이 돋아 월광단 해가 돋아 일광단 길주 명천 회려주 명주 세필 삼동주 흑공단 목공단 만수청산 운무단 바리바리 받아 둔 것 배뱅이 혼이 꼭 왔으니 나 보는데 박수무당 앞에다가 다 내다 줘요 오마니 오마니 오마니 모마니....
예장 받아 둔 비단이라도 다 내다주면 황천에 가서 오마니 보고풀 적에 이따금씩 꺼내놓고 오마니 본듯이 보겠으니 빨리빨리 내다 줘요 오마니 오마니.....
詞 :
함경도집 할머니가 다시 듣고 보아도 배뱅이 예장 받아 둔 것까지 찾아 내는 걸보니까 이것은 정말 배뱅이 혼이 꼭 온 것 같아서 안방에 들어가서 하는 말이 (아이고 배뱅이 오마니 빨리 나가 봐요 이것은 정말 배뱅이 혼이 왔읍지비야)하니까
배뱅이 어머니가 얼른 나와서 박수 무당 뒤에 서서 귀를 대고 듣는데 이번에야 정말 내 딸 배뱅이가 왔나 안 왔나 하고 들을 적에 이 건달 천년은 주막집에서 들은 대로 한참 사정을 하던 때라.
唱 :
반갑고 반갑구려 고향 산천이 반갑구나 고향 산천 초목들도 나를 보고 반기는데 우리 오만 아버지는 어디를 가고서 딸지식 배뱅이가 온 줄을 물라 주나요 오만 아버지가 날 이렇게 괄세를 한다면 내가 자라 날적에 우리 할아버지가 나를 귀엽다고 나가 놀면 나가 놀라 한 푼 주고 들어와 놀면 들어와 놀라 한푼 주고 잘 놀라고 한 푼 주고 울면 울지 말라고 한 푼 주신 노랑돈 아흔 아홉 냥 일곱 돈 칠 푼 오 리 꼭꼭 묶어서 종털바구니 속에 넣어 둔 것이라도 다 내다 줘요 오마니 오마니 야속하고도 무정해요 불초여식 딸 지식이라고 너무도 괄시가 심하외다 오마니 오마니.
詞 :
배뱅이 어머니가 이 소리를 듣고 얼마나 슬프던지 울음보가 급하게 터져 나오는데.
唱 :
(어머니)아이고 내 딸이야 내 딸이야 내 딸이야 살아서도 정신이 좋더니 죽어서도 정신이 그대로 있구나
내 딸이야 여보 영감 빨리 나와요 이번에야 정말 내 딸 배뱅이 혼이 꼭 왔소 빨리 나와요 빨라 나와
唱 :
(건달)오마니 날 같은 불초여식은 길러서 무엇에 쓰려고 길렀나요 오만 아바지 신세를 만분지일이라도 갚자고 했더니 나는 죽었소이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며 당상학발 늙은 양친부모 두고 가는 나는 가고 싶어 가겠나요 나는 내 명에 죽었소이다. 조금도 슬퍼 말고 잘 계시오 오마니 오마니 마지막 왔다 가는 길에 오마니는 보았으나 아바진 어데 갔소 아바지 아바지 얼굴이라도 보고 갑시다 아바지 아바지 ------
詞 :
배뱅이 아버지는 나와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듣고 점잖은 체모에 목을 놓고 울지는 못하고 배만 두꺼비 배처럼 불룩불룩 하다가 울음을 우는데
[이애 배뱅이 그까짓 예장 옷감이 다 무엇이냐 너의 애비 너의 에미 다 잡아가고 우리집 기둥뿌리 까지라도 다 빼 가거라]
[야 이거 정말 뻐근하구나]
이렇게 울며 나와 섯는 걸 보니까 두 늙은이가 배뱅이 오마니 아바지가 분명하단 말이야요. 이렇게 눈치로 다 찾았는데 건달 무당이 한 쪽을 바라보니까 어떤 젊은 여자가 둘이 어린애를 등에다 업고 와서 자꾸 울고 있어요 가만히 눈치를 보니까
(옳지 배뱅이가 자라날 적에 앞집에 세월네 뒷집에 네월네가 같이 자라났다더니 아마 저 애들이 세월네 네월네가 저렇게 와서 울고 있나 보다)
저 애들을 불러 만나 보아야 배뱅이 혼이 왔다는 표시가 분명히되어서 배뱅이네 재산을 좀 더 뺏어 갈 작정이란 말이야요.
唱 :
오마니 또 한가지 분하고 원통하외다 나 자라날 적에 자고 깨면 먼산에 달래 캐기 춘산에 나물 캐기 하면서 죽자 살자하며 같이 자라던 앞집의 세월네 뒷집의 네월네가 이 곁에 와 있으면서도 나를 모른 체하는 구려 세월네 네월네야 만나 보자꾸나 이리 좀 나오려마 만나 보자꾸나 너희가 오늘날 나를 만나 보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 간다면 내가 굿하고 돌아가는 길에 너희가 업고온 귀한 자식을 몽땅 다 잡아가겠다.
詞 :
아이구 세월네 네월네가 아이 잡아가겠다니까 무서워서 업고 온 아이를 썩 돌려 머리를 만져 보니까 아이 머리가 그냥 뜨끈뜨끈해요 고게 진종일 업고 있으니까 몸과 몸이 달쳐서 머리가 뜨거운 걸 이 그 무당귀신이 잡아가겠다니까 뜨거운 줄 알고 두 여자가 얼른 나와서 굿청에 떡 앉아요.
자 - 그러나 이름을 알수가 이어야지
唱 :
세월네 네월네야 나는 죽어서 북망산천에 가서도 아직 까지 이름을 고치지 않았다만 너희들은 나 죽은 후에 이름이나 고치지 않았느냐?
詞 :
"이애 내가 이름을 왜 고치니 얘 나는 너 죽은 다음에도 세월네 세월네대로 그대로 있단다. 얘"
아 요게 세월네라고 할 적엔 저쪽에 앉은 건 네월네가 분명해요.
唱 :
세월네 네월네야 반갑구나 아까는 분한지심에 그리 하였지만 형제지간에 복은 못 주나마 어찌 화를 주겠느냐 동 방삭의 명을 빌고 강 태공의 나이를 빌어 선팔십 후팔십 일백육십을 점지해 주니 스승군자 속태우지 말고 부디 평안히 잘 살아라.
그런데 마지막 왓다 가는 길에 너희들에게 또 한 가지 애원이 있다. 우리가 서로 자랄 적에 자구 깨면 시냇가에 빨래질 가서 빨랫돌 위에서 멱 감으며 놀제 네 손목이 크냐 내 손목이 크냐 하면서 서로서로 만지면서 놀던 손목이나 한번 만져 보자구나.
詞 :
(세월네 네월네) "얘 난 죽으면 죽었지 손목은 못 내 대겠다 얘."
또 동네 할먼네가 와 있다 하는 말이
"얘 세월네 네월네야 요건 정말 배뱅이 혼이 꼭 왔으니 어서 손목을 조금만 만져 보라고 해라"
부끄러우니까 세월네 네월네가 돌아서서 손목을 썩 내 대니까
唱 :
너의 손목을 만져 보니까 보들보들 한 손목이 살았을 적에 만지던 손목 그대로 변치 않았구나 다시 못 볼 세월네 네월네야 마지막 가는 길에 손목이나 한번 실컷 만져 보자구나
詞 :
섣달 그믐날 주부자루 주무르듯 주물럭 주물럭 막 주물렀죠.
아 구경꾼들이 가만히 보니까 괘씸해 박수무당 녀석 이 그 이상하다.
저녀석 저 무당녀석 정말 배뱅이 혼이 왔나 안왔나 한번 알아보자
하긴 한번 떠보자.
어떻게 하는고 하니 동네 갓을 모아다가 굿청에다 차근차근 올려 쌓아 놓고 제일 밑에다 배뱅이 아버지 갓을 갇다가 꽉 꽃아 놓고서
(동네청년)
이애 박수무당아 너 배뱅이 혼이 정말 왔느냐?
(박 수)
네 꼭 왔습니다.
(청 년)
그러면 바로 이 갓 가운데 네 혼이 왔다는 너의 아버지 갓 즉 배뱅이 아버지 갓이 이 가운데 있으니 너의 아버지 갓을 찾아 내거라 만일 못 찾아 내면 너는 당장 이 자리에서 즉사하리라
아이고 이거 야단 났어요 자 그많은 갓 중에 어느게 배뱅이 아버지 갓인지 알수가 있어야지요 꼭 죽었단 말이야요 엣다 내가 죽기는 매 일반인데 (갓을 모조리 찢어 버리면서 사방 눈치나 보다가 죽든지 살든지 할 작정으로 호통을 치면서) 갓을 한번 째 보는데
唱 :
"에-괘씸하고도 괘씸하고나 양반의 갓과 상놈의 갓을 어디다가 함부로 섞어 놓았느냐 우리 아버지 갓 하나만 남겨 놓고 무두 다 찢어 버리겠다"
"이 갓을 들고 보니 이 갓은 우리 아버지 갓이 아닙니다"
詞 :
쭉 쩨니까 저쪽에서 한사람이 있다가 "에이 쿠 내 갓 찢는데"
옳지 아마 여기 갓 임자들이 와 있나보다 눈치를 채고서 이번에는 사방을 슬슬 돌아 보면서 갓을 찢는데,
唱 :
"이 갓을 들고 보니 이 갓도 우리 아버지 갓이 아니로구나"
詞 :
쭉 - 째니까 저쪽에서 또 한 사람이 "에이 쿠 내 갓 찢는다"
이번에는 빨리 빨리 째야 되겠어요
唱 :
"이 갓을 들고 보니 이것도 우리 아버지 갓이 아닙니다"
"이 갓을 또 다시 보자 제쳐 보고 뒤쳐 보아도 이것도 우리 아버지 갓이 아닙니다"
詞 :
갓 임자들이 가만히 보니까 갓을 모조리 내려 째는 걸 보니 그냥 두었다가는 배뱅이 아버지 갓 하나만 남겨 놓고 다 쨀 판이야요 그때 갓임자들이 죽-들어와서 "이애 네 갓은 네가 쓰고 내 갓은 내가 쓴다"하고 제가금 갓을 다 쓰고 달아난 다음에 한 복판에 큼직한 갓이 하나 남았는데 가만히 배뱅이 아버지 우는 동작과 여기 있는 갓을 보니까 이게 배뱅이 아버지 갓이 분명한것 같아서 들고 하는 소리가
唱 :
이 갓을 들고 보니 통영 갓 등사 사립에 공단 갓 끈공줄 넣어 접어 단 것이 내 솜씨가 분명하니 우리 아버지 갓이 분명하구나 먼지가 한 두께 묻었어도 털어 줄 사람 하나 없었으니 이 아니 원통하냐
詞 :
갓을 툭툭 털어요.
"이애 요건 정말 배뱅이 혼이 꼭 왔구나"
이렇게 다 속이고서 배뱅이네 재산과 옷감 비단을 내 주니까 이 건달 청년이 돈 벌어 가지고 떠나가며 하는 소리가
唱 :
떠나간다 떠나간다 배뱅이 혼신이 떠나간다
에 ~ 헤 에헤 아미 타 ~ 어야 불이로다
잘 속았구나 잘 속았네 배뱅이 오만 아바지 잘 속았네 에~...
이번 굿에 돈 잘 번 것은 주막집 할머니 덕택이라 에~...
주막집 할머니 돈 받으소 천 냥 줄 돈을 만 냥 주오 에~...
평양 감염서 다 팔아먹은 재산 이번 굿에 반봉창 되었네
예 ~ 헤 에헤 아미 타 어야 불이로다.
해 설
이 배뱅이 굿은 1890년 평안남도 용강군 사람 김관준이 처음 지어 그의 아들 김종조에게 가르쳤고 그의 동료인 이인수로 이어져서 이은관 에게 계승 되었다.
현재 명창 이 은관의 창에 의해 문화재관리국으로 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 되었으며 지정 될 당시 조사 자료에 의한 순수 한 배뱅이 굿 그대로를 엮은 것이다.
배뱅이 굿의 구성은 황해도 민요인 산염불. 잦은 염불을 중심으로 해서 경기민요, 강원도 민요, 함경도 민요와 또한 경, 서도창이 다 들어 가는데 창자가 직접 아니리 식으로 설명을 해 가면서 부르는데 어떻게 보면 서도 창극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여기에 나오는 노래를 보면 긴 염불, 잦은 염불, 뱃노래, 사설 난봉가, 회심곡, 장님의 독경, 장타령, 황해도 굿소리 상여소리. 서울의 왕십리 굿소리 등이 많이 나오고 있다.
굿이라고 해서 전통적인 무속의 열두거리의 굿 놀음이 아니고 다만 사람이 죽어서 지너귀굿에 해당되는 대문만으로 재미있게 묘사한 서도 창극이라 할 수 있다
.
미신 타파의 사상이 주입되어 있지만 놀이에 불과하며 그런 의도는 아니고 주로 배뱅이라는
처녀의 죽은넋을 달래는 내용의 구성진 놀이로서 관서 지방에서는 중요한 예술의 한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