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노동자가 하늘로 떠났다

현대중 사내하청 노조 전 간부 자살… 해고 후 생활고
40대 시민단체 활동가도 목숨 끊어… 대선 뒤 세 번째
경향신문 | 백승목·이효상 기자 | 입력 2012.12.23 22:30 | 수정 2012.12.24 00:12

대선이 끝난 뒤 노동자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사측의 손해배상소송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모씨(34)가 지난 21일 자살한 데 이어 불과 하루 만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전 조직부장인 이모씨(42·택시기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노동자들이 생존과 처우 개선을 위한 희망을 찾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몰리다가 생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교체 실패에 실망한 활동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주노총은 "이 세 분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5년을 더 버틸 자신이 없다'는 것"이라며 "박근혜 당선자가 대통합을 말하려면 노동 현안 해결부터 나서야 한다"고 23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울산동부경찰서는 22일 오후 5시30분쯤 울산 동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이씨가 숨져 있는 것을 주민들이 발견해 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이씨가 숨질 당시 별도의 유서는 없었다. 이씨의 동료들은 "이씨가 2004년 현대중공업 크레인 점거농성 이후 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면서 "한진중공업 노조원 자살에다 최근 발생한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파업 과정의 폭행 사건 등 노동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것에 크게 실망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1997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영호산업)에 입사한 뒤 2001년부터 사내하청 노동자 모임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2003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창립 발기인이었고, 초대 조직부장을 맡아 2006년 말까지 노조활동을 했다.

해고 이후 그는 택배와 택시기사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오세일 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지회장은 "이씨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모임에 참가하거나, 현대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철폐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은 "지난 21일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파업하는 과정에서 17명이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에 받은 충격이 아주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배문석 정책국장은 "이씨가 자살하기 하루 전날 과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활동을 함께한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목을 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이 떨려 운전을 못하겠다'며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민권연대 활동가 최모씨(40)도 22일 오전 서울 도봉구 도봉동 자취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민권연대 관계자는 "(최씨의 죽음에는) 대선 결과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백승목·이효상 기자 smbaek@kyunghyang.com>

경향신문 관련기사

  |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

경향신문 실시간 주요뉴스

  |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