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광주’의 분노

한겨레 | 입력 2012.12.24 21:00 | 수정 2012.12.24 21:10

[한겨레]민주당에 몰표 던졌는데도 져


"5·18때 고립됐던 광주 떠올라


이런 결과 민주당이 밉다" 격앙


"박, 잘하는지 지켜볼 수밖에…"

"잘하기만 바라야지, 어쩌겄어요?"

일요일인 23일 낮 광주광역시 양동시장 하나분식에서 국밥을 먹던 김정수(48·서구 치평동)씨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두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지요. 그리고 지켜봐야지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호남)만 빼놓고 다 새누리당을 찍었으니 착잡하지요"라고 말했다.

대선이 끝난 지 닷새가 지났지만 광주는 좀처럼 정치적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91.97%의 몰표를 던졌는데도 패배한 허탈감을 떨어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슈퍼마켓을 하는 강찬선(50)씨는 24일 "대선 이튿날 새벽, 목욕탕에서 만난 지인 20여명이 다들 멍해 있더라. 마치 광주가 웃음거리가 된 듯했다. 광주가 민주화에 앞장서왔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상처를 받은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민주당을 향해 서운함을 드러내는가 하면, 정치적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2일 밤,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26년>을 관람했다는 조아무개(45·교사)씨는 "대선 개표 지지도 지도를 보면서, 80년 5·18 때 고립됐던 광주가 떠올랐다. 영화를 보면서도 내내 착잡하고 씁쓸했다. 이런 정치적 결과를 가져온 민주당이 밉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광주 충장로에서 표창원경찰대 교수가 펼친 프리허그 행사에 모인 시민 2000여명 가운데 일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다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오승용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앞세웠던 민주당 그룹들이 단일화 구도만 되면 이긴다고 했던 '신화'가 무너졌다. 오히려 다행이다. 장기적으론 약이 될 테니"라고 꼬집었다.

23일 무등산 기슭 문빈정사 앞에서 만난 등산객 마재룡(50·자영업)씨는 "인자, 민주당을 술안주로 거론할 때도 아니요. 새 안주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 아니오?"라고 반문하듯 말했다. 그는 "쓸만한 순이 올라오면 정치적 영양분을 줄 준비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이 꾸린 '투표참여 시민행동'은 26일 오후 광주와이엠시에이(YMCA)에서 대선 결과 평가회를 연다. 오수성 전남대 교수(심리학과)는 "시민들의 분노와 좌절을 치유하는 것은 대선 결과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시민들이 민주당을 변화시켜 새 질서를 만들어 가면서, 박근혜 정부에 정책 대안을 적극 제시하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