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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박꽃
―박경희 (1974∼ )
박 중에서
가장 가슴에 남는 박은
바가지로도 쓸 수 없고
죽도 뜰 수 없는
통박!
쪽박도 면박도
통박에 비하면 깨진 박 축에도 못 끼는데
마흔이 다 된 게
밥물도 맞출 줄 모르느냐고
고두밥도 모자라 쌀이 씹힌다고
국수는 오래 삶아야 속까지 익지
예산 국수 공장에서 금방 뽑아 왔느냐고
시금치나물은 살짝 익혀야지
흐물흐물해서 어디 씹히기나 하겠느냐고
소금은 순금으로 만들어
그리 귀해서 간이 싱겁느냐고
두릅은 나무둥치를 잘라서 했느냐고
씹으면 그나마 남은 이 다 부러지겠다고
금니 박아줄 수 있느냐고
그깟 글 나부랭이 써서
어느 세월에 똥구멍에 볕 들 날 있겠느냐고
고향 집에서 돌아오다 바라본
참말로 환장하게 환한 꽃!
박꽃!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6』(동아일보. 2012년 11월 12일)
ㅡ시집『벚꽃 문신』(실천문학사, 2012)
2012-11-12 03:00 2012-11-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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