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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인 광주 | 무등산 옛길]스물한 번째 국립공원, 그 갈 수 없는 정상①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2. 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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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인 광주 | 무등산 옛길]스물한 번째 국립공원, 그 갈 수 없는 정상①

무등산 옛길2구간 '무아지경길' 원점회귀 4.12km 월간마운틴 | 글 이소언 기자 | 입력 2013.02.04 17:22 | 수정 2013.02.04 17:35

 

 

↑ 서석대전망대 가기 전 만나는 곳으로 건너편 중봉과 광주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광주광역시 도심을 에워싸며 솟아있는 무등산은 오랜 세월 시민들의 애환과 영욕을 함께 품어주었다.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며 대체로 산세가 유순하고 아늑하지만 너덜이 발달해있고, 정상부근에는 서석대·입석대 등 주상절리대가 수정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마치 해금강을 산 위로 옮겨놓은 것 같다"고 비유했다.


무등산은 산세가 유순하고 아늑함을 지녀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며 오랜 세월동안 광주시민들의 애환과 영욕을 함께 품어주었다. 산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도심 배후에서 도시를 감싸며 입석대, 서석대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가사문화권을 비롯한 유서 깊은 문화유적 등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보전 가치를 지닌다.

광주의 명산으로 불리며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40년만인 2012년 12월 27일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10년 전부터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립공원으로의 승격운동을 전개했고, 공청회 등을 통한 여론 수렴과 광주·전남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며 무등산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했다.

그 결과 광주시내 곳곳에 설치된 '시민의 품에서 국민의 품으로'라는 플래카드의 문구가 말해주듯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의 명산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국립공원 신규지정은 1988년 변산반도·월출산 이후 24년 만으로 이로서 21번째 국립공원이 탄생했다.

옛날부터 호남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졌으며, 광주시민의 자부심으로 불리는 무등산 옛길2구간으로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의 이미영 해설사와 함께했다.

↑ 건축물의 기둥같이 우뚝 솟은 입석대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시림 따라 이어지는 옛길2구간 '무아지경 길'

옛길코스는 2008년 12월부터 '무등산 옛길 복원사업'이 시행되어 2010년 7월 개방된 3구간을 끝으로 완성되었다. 증심사 지구로 탐방객이 몰리는 편중된 수요를 분산시키기고, 선조들의 옛 문화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산책길을 제공하기 위해 황소걸음 길, 김삿갓 길, 연인의 길, 산장가는 길 등 무등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토대로 꾸며졌다.

1구간(7.75km)은 비교적 평지를 걷는 듯한 숲길로 산수동에서 원효사까지를 말한다. 원효사를 시작으로 서석대에 이르는 2구간(4.12km)은 무등산 본래의 자연환경을 살린 등산코스로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사색하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일명 '무아지경 길'이다. 마지막으로 개방된 3구간(11.3km)은 장원삼거리에서 가사문화권으로 이어지는 '나무꾼 길'과 '역사길'이다. 능선을 따라 숲, 계곡, 들판을 지나 연결되는 길을 통해 역사체험, 정자문화체험, 농촌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1·2구간의 총 거리는 11.87km로 무등산 높이(1187m)를 상징하기도 한다. 1·2구간을 연결해 종주할 수 있으며, 3구간은 1구간과 교차지점만 있을 뿐 연결되지 않는 독립코스다.

원효사주차장에서 왼편 임도를 따라 걸어가면 '무등산 옛길'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있다. 비석 옆 돌계단을 따라 산길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옛길2구간 산행이 시작된다. 원시림에 가까운 길은 눈까지 쌓여 아늑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안겨주며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평일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증심사 지구로 몰리는 등산객의 수요가 커 인적이 드문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10분정도 완만한 능선을 오르다 보니 제철 유적지에 도착한다. 언뜻 보았을 때 누군가의 무덤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둘러놓았다. 주검동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임진왜란 때 칼과 창을 만든 곳으로 돌에서 철을 제조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한다. 그 옆으로 큰 바위에는 장군의 활약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한 글이 새겨져있다.

다소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가면 자연쉼터를 지나 물통거리가 나온다. 물통거리는 옛날부터 나무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 길로 이용되었고, 1960년대에는 군부대가 보급품을 나르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로는 사용되지 않다가 옛길 복원사업을 통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길이 갈리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군사작전도로로 이어져 탈출로로도 이용된다.

왼쪽으로 길을 잇자 평탄하게 이어지는 산길 양옆으로 산죽나무가 무성하고, 하얀 눈 위로 떨어진 소나무 잎이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소나무의 솔잎은 2개씩 짝을 지어 나지만, 산을 오를수록 3개씩 나있는 잎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미영 해설사는 설명한다. 이는 본래 2엽송인 우리나라 소나무와 달리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리기다소나무는 3엽송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이 황폐해져, 원식생이 파괴된 후 2차 식생으로 외래수종이 많이 심어져 무등산의 생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작년 여름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곳곳에 쓰러지고 뿌리 뽑힌 나무들이 눈에 띈다.

원효사계곡 시원지에 다다르니 얼어버린 계곡물을 따라 찬바람이 불어온다. 나무그늘 아래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 숨은 명소라 한다. 이곳부터 다시 조금씩 경사가 있는 산길이 이어지지만 대체로 완만해 등산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옛길2코스를 무아지경길이라 부르듯 새소리,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자 오감이 자연과 소통한다.

↑ 옛길 2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을 지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고지대 주상절리

무등산은 옛 선조 때부터 신성시 되었으며, 문학 발달에 있어서도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다. 독수정,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등을 중심으로 시가문화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그 가운데는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송강 정철은 귀양 간 아버지를 따라 10여 년간 무등산 시가문화권에서 청소년시절을 보내며, 배우고 닦아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성장했다. 문과별시 장원이라는 감격을 안고 한양으로 진출한 뒤에도 힘들 때면 무등산 품에 안기기 위해 먼 길을 네 번이나 내려왔다고 전해진다. 그의 작품 <성산별곡>은 무등산의 아름다운 사계와 그 안에 사는 다정한 친구를 노래한 것으로 무등산을 가사문학의 탄생지라고 부른다.

계곡 위로 놓인 짧은 다리를 건너면 다시 한 번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난다. 오른쪽은 군사작전도로로 나가는 길로 얼음바위 방향으로 연결된다. 왼쪽 서석대 방향을 따라 5분 정도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위로 보이는 정상부근의 산 능선 또한 평탄해 가을단풍이 들면 붉은 양탄자 같다고 한다. 오르막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군사작전도로와 만난다.

산길 중간에 군사작전도로가 지나면서 만들어진 사거리는 다른 방향으로 길을 이어온 등산객들과 합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곳부터 서석대까지는 0.5km. 제법 고도가 높아진 탓인지 체감온도가 달라 한기가 돌고, 경사도 가파르다보니 긴장감이 든다. 쌓인 눈의 표면이 녹지 않은 곳이 많아 미끄러운 탓에 이전보다 발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10분 정도 오르니 광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풍이 불지만 멋진 전망을 감상하느라 잠시 머물게 된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상절리대 비경의 서막을 알리는 듯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는 정상능선을 오르기 전 바람을 막아주는 병풍이 되어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옛길2구간


연결된 계단을 따라 오르자 뒤이어 서석대전망대가 눈앞에 나타난다. 서석대가 광주 시내를 바라보듯 산위에 우뚝 솟아있는 모습은 신비로울 정도다. 제주도 해안가에서 보았던 주상절리만 알았지, 산위에 주상절리가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흐르다가 바다와 만나면서 굳은 것으로, 4~6각형의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무등산이 화산지형임을 알려주는 것.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에 발달한 주상절리대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로 입석대와 함께 2005년 천연기념물 465호로 지정, 세계자연유산 등재 또한 추진되고 있다. 무등산의 주상절리는 지금으로부터 7000만 년 전쯤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 때 형성된 것으로, 25만 년 전쯤 형성된 제주도 주상절리보다도 훨씬 오래됐다. 광주에 사는 학생들은 초·중·고등학교 때까지 소풍으로 무등산을 찾는다 한다. 가깝기도 하지만 산을 통해 배우는 역사적 가치 또한 충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옛 선조들이 올랐던 옛길 정상입니다. 11.87km 전구간 완주를 축하합니다.' 서석대 전망대를 얼마 지나지 않아 무등산옛길 종점을 알리는 축하푯말이 꽂혀있다. 정상능선을 오름과 동시에 옛길코스는 끝이 난다. 옛길코스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산을 오르는 등산코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중간 중간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있고, 사람들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원시자연림을 벗 삼아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 좋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