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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이 쩍 갈라져도, 울지 못하는 우리는… 50代"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3. 2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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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이 쩍 갈라져도, 울지 못하는 우리는… 50代"

[책, 나이 '쉰'에 주목하다]
출판계 '50 市場'이 온다 - 독자는 30~40대 공론 깨고 '오십의 발견' 등 잇따라 출간
어떤 내용? - 추억·현실 박탈감·미래 불안감… 55~63년생의 '한숨' 주로 다뤄
"우리 세대 고민 나누고 싶었다"
조선일보 | 박돈규 기자 | 입력 2013.03.23 03:15

 

"'서른 시장' '마흔 시장'은 있어도 '쉰 시장'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출판인들은 호언장담했다. 30대 독자를 끄는 책, 40대 독자를 겨냥한 책은 서점에 차고 넘친다. 1년에 52만5600분씩 세월은 가고 40대는 머지않아 50대가 될 텐데 왜 '쉰 시장'을 저리 매정하게 예단할까? 책을 만들고 판다는 이들은 "독자는 '3말 4초'(30대 후반~40대 초반)가 핵심"이라는 통계를 들이밀면서 "'쉰 시장'은 어감부터 좋지 않다"는 우스개를 했다.

↑ [조선일보]

보란 듯이 산문집 '오십의 발견'이 나왔다. 저자 이갑수(54)는 "귀하는 지금 행복한가" 묻고, 어릴 적 추억을 불러내고, '태어난 지 1만8775일째'라며 자기 몸을 쓰다듬는다. 송호근(57) 서울대 교수는 최근 펴낸 에세이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에서 자신이 속한 50대를 가장 서글픈 세대라고 칭한다. 고도성장에 청춘을 바치고 현대화에 중년의 시간을 쏟아부은 이들이 책이라는 형태로 자기의 한숨 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 오십, 남자는 아프다

오십은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다. 하지만 '오십의 발견'을 쓴 이갑수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접수한다. "씩씩하게 살아온 날들도 이젠 나를 감당하기에 지쳤는가. 발밑이 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아프다."(48쪽)

저자는 서문에 "(일생을 하루로 요약하면) 우물쭈물하다 정오를 지나 오후로 진입했는데, 오후는 '오십 이후'의 준말"이라고 적었다. 미당 서정주는 마흔다섯을 '귀신이 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라고 했다. 거기에 다섯을 더 얹었는데 귀신은커녕 한숨만 늘었다. 분주히 움직이지만 소모품에 불과한 '야구공'마냥 처량한 신세다.

"야구공은 던지면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때리면 빨랫줄처럼 뻗어나간다. 그 어떤 관중보다도 바쁘고 그 어떤 선수보다도 많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정작 시합에서 누가 이기고 지는 줄 모르는 것은 야구공뿐이다."(253쪽)

이갑수는 "50대는 앞으로 어떻게 삶을 견디고 끝까지 갈지 고민하는 불안한 세대"라면서 "살아온 날의 기억 중에서 오늘을 버티는 교훈, 슬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이갑수는 시인이자 궁리출판사 사장인데 책은 민음사에서 냈다. 쓸 만한지 객관적인 눈이 필요해 익명으로 투고해 책을 내게 됐다고 한다. 애초의 제목은 '오십자술(五十自述)이었다.

쉰 살이 재정의된다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는 56년생 양띠 대학교수(송호근)와 58년생 개띠 대리운전기사의 만남에서 탄생했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라 불린다. 55~63년생, 나이로는 50~58세에 이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2010년 통계로는 전국에 715만명이 있다.

한국인은 평균 55.9세에 퇴직한다. 경륜과 기술은 무르익고, 자녀 결혼이라는 과업은 아직 남아 있을 나이다. '중년의 슬픔'은 일반화돼 있다. 지난해 50대 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설문조사에서 61%는 "행복하지 않다"고 답했다. 송호근은 "베이비부머의 60~70%는 퇴직부터 61세 연금 수령까지 아무 소득이 없는 '크레바스(crevasse·빙하의 갈라진 틈)'로 내몰린다"고 진단했다.

50대 남성을 향한 처방은 '독립하라!'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방해만 될 뿐이다. 송호근은 "정서적으로 홀로 서려면 죽음에 대한 명상, 자존심을 버린 일자리, 취미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승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세대는 20대도 30대도 아니고 50대였다. 그런데 그들을 향한 책은 전무하다시피했다. 세상에 없는 양 무시했다. 어린이 책 붐을 이끌었던 386세대가 50줄에 들어서면 독서 시장이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오십의 발견'과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가 오십 시장 개척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마침 윤재근 한양대 명예교수가 고전을 푼 '인생 오십 남달리 살피고 사랑하라'를 펴냈다. 쉰 살이 재정의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50대는 '회색의 청춘'이고, 우리도 언젠가 그 모퉁이를 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