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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아들 번호로 전화 걸었다가 울기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3. 2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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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아들 번호로 전화 걸었다가 울기도"

[천안함 46용사 음력 3주기]
-다시 모인 유가족
해군2함대 공동추모제 위해 전날부터 모여 함께 하룻밤… 상처받은 마음 서로 달래 줘
-아들 못 잊는 어머니들
비 맞는 군인들만 봐도 눈물, 아들 번호로 전화 걸었다가 낯선 목소리에 한참 울기도
조선일보 | 평택 | 입력 2013.03.22 03:14 | 수정 2013.03.22 06:52

 

음력으로 천안함 3주기 하루 전날인 20일, 고(故) 이재민 하사의 부모와 고 조진영 중사의 부모, 고 서대호 중사의 어머니가 경기도 평택에 있는 고 박보람 중사의 집에 모였다. 손님이 온다는 말에 박보람 중사의 어머니 박명이(51)씨는 이번 겨울 들어 처음 보일러를 틀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도 집을 따뜻하게 데워본 기억이 없다. 박씨는 "오랫동안 차가운 물속에 있다가 발견된 아들 생각이 나 보일러를 틀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고(故) 박보람 중사의 아버지 박봉서(57)씨가 아들과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을 보고 있다. 박씨는“3월만 되면 마음이 더 아파온다”며“가슴에 묻는 방법 같은 건 난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 [조선일보]21일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내 해웅사에서 열린 천안함 3주기(음력) 추모제에서 고(故) 서대호 중사의 어머니 안민자(54)씨가 천안함 46용사의 넋을 기리며 눈물 흘리고 있다. /성형주 기자

박 중사의 시신은 천안함 폭침 28일 만에 천안함 연돌(연통) 부근에서 발견됐다. 마지막까지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애태우던 어머니 박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아버지와 동생이 시신을 확인하러 갔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한 게 내 평생의 한(恨)"이라며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방 한쪽 벽에 아들의 관을 덮었던 태극기가 걸려 있지만, 박씨는 아직도 남편(박봉서·57)에게 "그때 당신이 확인한 얼굴이 보람이가 확실해?"라고 묻는다. 박씨는 아들이 다시 올 수 있다며 2010년 3월 26일(천안함 폭침 당일) 이후 한 번도 닫지 않은 방문을 오늘도 열어두었다.

'천사 방'이라고 문패를 달아놓은 박 중사의 방에는 큰 철쭉 화분이 놓여 있었다. 활짝 핀 꽃들이 붉었다. 박씨는 "꽃을 좋아하던 보람이는 '꽃은 많은 사람이 보라고 있는 것'이라며 꽃 한 송이도 못 따게 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로를 "아들이 만들어주고 간 새로운 가족"이라 했다. 여전히 떠도는 천안함 괴담과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잊으라'는 말들로 상처받은 마음을 새로운 가족끼리 위로하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부모들은 "아직도 대문과 방문을 닫아놓지 못하고 작은 소리만 나도 벌떡벌떡 일어난다"며 "남들은 가슴에 묻으라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가슴에 묻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진영 중사의 어머니 박정연(51)씨는 "작년 천안함 2주기 추모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부대 배치를 갓 받은 것 같은 군인 7~8명이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해군2함대 사령부를 찾고 있더라"며 "우리 진영이도 저런 모습으로 왔겠구나 하는 마음에 집에 가는 내내 한참을 울었다"고 말했다.

조 중사의 어머니 박씨는 "술을 먹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들 단축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가 다른 사람이 받는 바람에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한참을 운 적도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들 휴대전화 번호를 지우지 못하는 건 모두 마찬가지라 했다. 서대호 중사의 어머니 안민자(54)씨는 첫 면회 때 아들이 만지작거렸던 휴대전화를 버리지 못해 자꾸 고장이 나는 구형 폴더폰을 아직 쓰고 있다. "우리 아들 손이 닿은 걸 버릴 수 없어서…." 안씨 휴대전화에는 여전히 서 중사 사진이 바탕화면에 띄워져 있었다.

함께 하룻밤을 보낸 이들은 음력으로 천안함 3주기인 21일 오전 10시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내 해웅사에서 천안함 3주기 추모제를 지냈다. 전날 함께 지내지 못한 가족들까지 총 14가족 30여명이 모였다.

박보람 중사의 어머니 박명이씨는 이날 아들이 좋아했던 맥주·김밥·과일을 싸들고 해군2함대사령부가 아닌 대전 현충원에서 3주기를 추모했다. 박씨는 "아직도 군인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 평택에 살면서도 해군2함대 사령부에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들 묘지 앞에서 "보고 싶은 아들아, 아직도 나는 믿기지 않는다"며 울었다. 박 중사가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 수술비로 쓰기 위해 월급을 쪼개 부었던 적금 1858만원은 아직 그대로라 했다.

박 중사의 방에는 군에 입대해 3주차 훈련을 마친 박 중사가 보낸 편지와 어머니가 박 중사를 그리며 쓴 편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부모님, 저는 얼굴이 너무 타 검둥이가 됐습니다. 안경 부분만 덜 타서 안경을 벗으면 판다가 돼요. 엄마가 해주신 보쌈이 제일 먹고 싶어요. 전 건강하니 걱정하지 마시고요."(2008년 5월 18일)

"얼마나 더 서러운 눈물 떨구어야 너의 예쁜 얼굴 한번 만져볼 수 있는 날이 올는지. 엄마는 오늘도 잠이 오지 않는구나.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