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산행 ABC] 인슐린 맞고도 히말라야 갈 수 있다
당뇨인을 위한 산행요령 월간마운틴 글 이영준 기자 입력 2013.04.23 13:31 수정 2013.04.23 13:34
현재 국내 당뇨병 환자는 24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작년 국민영양정책 토론회 보고자료를 살펴보면 2030년에 7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쌀밥을 많이 먹으면 걸린다고 해 '부자 병'이라는 옛말이 있던 당뇨병이 국민 소득수준 증대와 스트레스 등 사회적 영향에 따라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혈당이 높아지며 소변을 통해 당이 나오게 되는 당뇨병은 대표적인 성인병으로 꼽힌다. 한방에서 '소갈증'이라고 불려온 당뇨병은 몇 가지 증상을 수반한다.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을 자주 보며, 쉽게 피곤해지고, 식사량은 같은데 체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증상 등이 그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증상들이 나타난다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는 것이 좋다.
당뇨병은 '병'이지만 전문가들은 한편으론 병이 아니라고 말한다. 당뇨 관리를 위해 규칙적인 식사, 절제된 생활과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일반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비결이 되기도 하며, 병원에도 정기적으로 가 검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질병 징후를 보통 사람보다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당뇨병은 제1형 당뇨와 제2형 당뇨로 구분되는데, '소아당뇨'라고도 하는 제1형 당뇨는 바이러스 감염이나 췌장 질환, 유전적인 요인 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슐린 주사를 꼭 맞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성인병으로서의 당뇨병은 대부분 30세 이후 발병하는 제2형 당뇨로, 이 원인으로는 비만과 스트레스가 꼽힌다.
↑ 등산 중 꼭 가지고 다녀야 할 행동식. 저혈당이 왔을 때는 사탕 3~4개나 초코바 1~2개를 먹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당뇨인은 등산 중에도 저혈당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사탕, 초콜릿, 주스 등 단당류 간식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게 좋다.
무리하게 운행 말고 저혈당에 대비하라
당뇨병의 치료는 크게 식사와 운동, 인슐린 주사와 혈당강하제 등 약물 투입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당뇨병은 완치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치료'라기보다 '관리'로 보아야 옳다. 혈당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합병증을 유발하게 되는데, 이 같은 여러 방법을 통해 혈당을 보통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식사와 운동만으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당뇨병 환자가 있는 반면, 인슐린 주사를 맞고 혈당강하제를 먹으면서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두에게 운동이란 빼놓을 수 없는 치료법 중 하나이며, 급격한 근육 운동보다 유산소 운동이 권장되고 있기 때문에 등산은 여러 모로 당뇨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산을 하는 법은 간단하다. 산으로 올라가면 된다. 하지만 당뇨가 있다면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꼼꼼히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저혈당에 대한 대비다. 당뇨병의 여러 증상 중 가장 쉽게 닥치고 또 위험한 것이 저혈당이기 때문이다. 공복시 정상적인 혈당은 70∼115mg/dL, 식사 후 2시간 혈당은 140mg/dL정도이다. 저혈당이란 공복시 피속의 포도당 농도가 이보다 낮은 경우를 이야기하며, 인슐린이나 혈당강하제의 과다 투입이나 식사를 제대로 못했을 때, 무리한 운동을 했을 때 찾아올 수 있다.
저혈당의 증상은 처음에는 배가 고프고, 온몸이 떨리며, 기운이 없고,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뛰고 불안해지며, 손끝이 저리거나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지고 균형감각을 잃는 경우도 있다.
저혈당이 찾아왔을 때 일찍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머리가 아파오고 의식이 흐려지며 결국 쇼크로 정신을 잃게 된다.
등산 중 저혈당이 위험한 것은 바로 이런데 있다. 저혈당 증상으로 발생한 사고 중 많은 경우가 뇌진탕으로 이어진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고 넘어지며 머리를 부딪치는 2차 상해를 당하는 것이다. 때문에 심각한 저혈당이 오지 않도록 미리 대처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장 쉬운 방법은 단것을 섭취해 혈당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단것이란, 포도당으로 분해가 가장 빠른 단당류가 좋다. 탄수화물이나 지방은 칼로리가 높지만 분해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물론 고체보다는 액체로 된 것, 가령 설탕물이 몸에 흡수되는 시간이 가장 짧다.
저혈당 증세가 오면 당사자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단것을 마구 먹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 번에 사탕 3~4개, 콜라나 주스 등 가당 음료 1~2컵, 초코바 1~2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적당하다. 단것을 먹고 난 후 15분 정도는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하는 게 좋으며, 이후에도 저혈당 증상이 가시지 않으면 당류를 더 섭취하거나 과자나 빵 등을 먹도록 한다. 의식을 잃은 저혈당 환자는 혼자 힘으로 먹을 수가 없으므로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데, 이땐 액체로 된 단당류를 먹여야 한다. 이때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 먹인 후 구조대를 기다린다. 병원으로 옮기면 글루코겐이나 포도당주사를 처방하기도 한다.
한번 저혈당을 겪고 나면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빈번한 저혈당은 지능저하 등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저혈당이 생겼다는 건 식사량이 적었거나, 운동이 과다했거나, 인슐린이나 약물이 과다 투입되었을 경우다. 혼수에 대비해 본인이 당뇨환자임을 밝히는 인식표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방법이다. 목걸이나 팔찌 형태로 된 인식표는 병원이나 당뇨병 관련 단체에서 구할 수 있다.
↑ 장기산행 시에는 자신으 혈당을 체크해보고 상황에 따라 음식 섭취량을 조절하거나 인슐린 등 약물 투여량을 조절해야 한다. 포켓사이즈 간이 혈당측정기는 10만원 선에 살 수 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어라
당뇨환자가 처음 산에 가면 북한산도 히말라야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보통 사람에 비해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등산을 통해 당뇨관리를 하려고 계획한다면 처음에는 2~3시간 이내의 짧은 코스를 택해 체력에 부담이 적은 범위에서 천천히 걷는 것이 좋다. 등산 경험이 늘어 1박 이상의 장기 산행을 계획할 경우에도 보통 사람보다는 하루에 걷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여러 모로 낫다. 가령 지리산 종주를 하려고 하면, 보통 2박3일 걸리는 코스를 3박4일에 걸어보라. 무리하게 산행한 날 당일엔 저혈당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수면 중에 저혈당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로 절대 체력 범위를 벗어나는 산행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천천히 운행하면 그만큼 보고 느끼는 즐거움도 배가될 것이다.
장기산행 시에는 혈당측정기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하루 운행 후 저녁식사 전에 혈당을 체크하고, 식사 2시간 후에도 체크해 너무 낮다 싶으면 새벽의 저혈당에 대비해 우유 1잔 등 미리 음식물을 섭취하는 게 좋다. 반면 혈당이 너무 높으면 아침에 일어날 때 매우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이때는 바로 잠들지 말고 잠시 산책을 한다거나 운동을 조금 더 해 정상혈당으로 유지시킨 뒤 자는 것이 좋다.
등산은 주로 발을 사용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당뇨환자의 경우 발 관리에 신경을 써야한다. 하루 종일 꼭 죄는 등산화를 신으면 발이 불편하기 마련인데, 발에는 말초혈관이 몰려 있기 때문에 괴사 등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당뇨환자는 상처가 생기면 보통 사람에 비해 잘 아물지 않기 때문에, 바위 등에 긁히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도 중요하며 상처가 났을 시에 그대로 두지 말고 집에 돌아와 소독과 관리 등을 꼼꼼히 해주어야 한다. 이 모든 건 '천천히'라는 말 속에 모두 담겨있다.
의사들이 권하는 등산은 주말산행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급적 매일 2~3시간씩 등산을 하라고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평일에는 주변 산책이나 다른 운동을 하며 기초 체력을 다지고, 주말엔 산에 가서 자연이 주는 즐거움들을 느껴보자. 조금씩 건강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Tip 당뇨인의 등산 10계명
01 저혈당에 대비하라
02 강행군 하지 마라
03 발 관리에 신경써라
04 하산주는 짧게
05 산행 다음날 새벽을 조심하라
06 일행에게 당뇨가 있음을 알려라
07 가급적 혼자 산행에 나서지 마라
08 상처가 나지 않게 주의하라
09 천천히 걸어라
10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연과 교감하라
Tip 22년 '당뇨기자'의 산행비결
기자는 사실 당뇨병과 22년간이나 함께해왔다. 제1형 당뇨로 지금도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다. 기자가 지금까지 등산을 해오며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건 앞서 말한 것처럼 저혈당에 대한 대비이다. 초콜릿, 사탕 등을 꼭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저혈당 전조증상이라는 판단이 들면 혈당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무조건 먹는 게 낫다. 적어도 저혈당을 방치해 쓰러지는 것보다는 혈당이 조금 올라가는 게 낫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당뇨환자들은, 특히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모두 함께 운행 중인데 혼자서 간식을 먹는다고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미리 일행들에게 자신이 당뇨가 있다고 알리는 것을 주저하지 말자.
하산주는 우리나라 산행 풍토상 빼놓을 수 없는 자리다. 당뇨환자에게 술은 금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자리라면 보다 독한 술을 먹는 게 낫다. 의사들은 기왕 마실 거면 막걸리나 맥주보다 소주를 한두 잔 하라고 말한다. 빨리 취하니 덜 먹게 된다는 것이다. 알코올 성분은 칼로리는 높지만 결국 혈당을 떨어뜨린다. 산행을 하고 피로한 상태에서 하산주까지 마시고 나면 다음날 새벽에 저혈당이 오는 경우가 많다. 수면 중 오는 저혈당은 빠르게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해질 수도 있다. 술은 먹어도 밥을 거르지는 말라는 뜻이다.
당뇨인도 히말라야 원정 갈 수 있다. 기자도 그래서 몇 번 다녀왔다(의사들은 모두 말렸지만). 오지에 갈 땐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드니 모든 것을 본인이 조절해야 한다. 인슐린은 얼지 않도록 보온팩에 담고, 등반 중에는 옷 가장 안쪽에 품고 다녀야 한다. 보통 고산등반은 이른 새벽에 시작하기 때문에 식사시간을 가늠하기 힘든데, 혈당 체크를 통해 자신의 혈당 수치를 파악하고 주사량을 조절한다. 등반 중에는 체력소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평소 맞는 양보다 절반~1/3까지 양을 줄이기도 했고, 개인 행동식을 다른 사람보다 1.5배가량 많이 준비했다. 당뇨는 대표적인 순환기장애기 때문에 동상에도 주의해야 한다. 말초혈관이 몰린 발가락이 가장 동상 위험이 크기 때문에 매일 발을 닦고 양말이 젖으면 바로 갈아 신는 등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물론 담배는 좋지 않다. 이 내용은 의학적 근거보다 경험에서 온 것이니 참조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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