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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위장취업 시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7. 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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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위장취업 시대

[가스公, 고졸직원 30명 뽑았는데 알고보니 27명이 대졸] 90년대 이후 폭증한 대졸자, 취업 위해 학력 낮춰 지원 일부 기업 "최종학력 고졸인지 확인하라" 지시 조선비즈 | 이인열 기자 | 입력 2013.07.13 03:06
최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 강연회에서 청년 실업 문제를 설명하다가 이런 얘기를 꺼냈다.

"이전 정부에서 고졸(高卒) 채용 붐이 일었을 때 한 공공 기관에서 고졸 직원을 30명 뽑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중 27명이 대졸자였습니다."

본지 취재 결과 윤 장관이 말한 공공 기관은 한국가스공사였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초 가스 설비 교대 근무자를 뽑으려고 '고졸 채용'을 실시했는데, 30명 정원 중 순수 고졸자는 3명뿐이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워낙 취업난이 심각하다 보니 고졸 일자리에 대졸자가 대거 몰렸다"면서 "고졸자만 뽑으면 '역(逆)학력차별'이란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고졸자 전형'이란 이름으로 채용을 진행하다 보니 대졸자가 더 많이 뽑혔던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을 위해 대학 학벌을 사실상 숨기는 신(新)위장취업의 현장이다. 대학생들이 노동운동을 하려고 구로공단 등의 고졸 생산직에 학력을 속이고 취업하던 것이 70~80년대식 '위장취업'이었다면, 지금은 취업을 위해 대학 재학이나 대학 졸업 학력을 버리고 고졸 일자리에 지원하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신위장취업은) 1990년대 이후 대졸자는 폭증한 반면 이에 걸맞은 일자리는 거의 그대로인 상태가 20여년간 지속되면서 벌어진 어마어마한 미스매치(불일치)의 결과물"이라며 "이런 현실에서 대졸자들이 고졸자의 일자리 중 양질 일자리로 침범해 들어가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하향 취업 또는 신위장취업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1982년 대학 졸업자 중에서 하향 취업은 24.1%였지만 1992년엔 27.7%, 2002년엔 31.0%까지 올랐다.

지난해 초 공기업인 LH공사 인사팀은 깜짝 놀랐다. 특성화고 교장 추천을 전제로 고졸자 200명을 채용한다고 했더니, 무려 1975명이 지원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중에서 120명이 대학 재학생이었다. 이 중 70~80명은 4년제 대학 재학생이었다. LH공사 측은 특성화고 출신을 우대한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 '백수'이거나 대학 재학생도 '고졸 채용'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LH공사 인사팀 관계자는 "고졸 채용은 입사 후 한 단계 낮은 직급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빼고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면서 "대학에서 토목공학과 등 공대를 다니다 온 학생이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장'보다 취업을 택하면서, 학력과 학벌을 포기한 것이다. '고졸 채용에 대학생이 대거 몰려온다'는 얘기가 퍼져나가자 당시 LH공사 이지송 사장은 "고졸자 취업 취지에 맞도록 학력 확인을 제대로 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현행 시스템에서 지원자의 최종 학력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LH공사 인사팀은 "요즘 대학생이 대부분 학자금을 융자받고 있다"는 얘기에 주목해서, 지원자 이름을 한국장학재단에 조회하는 등의 방법까지 동원할 정도였다.

사정이 이렇자, 각종 취업 카페 등에는 '4년제 대학 출신인데 고졸로 이력서를 내도 될까요?' 등의 '신위장 취업'을 고민하는 구직자들의 글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다니고 있는 대학 이름을 실명으로 밝힌 한 재학생이 올린 글을 보면 "이미 1학년 때 학점이 나빠 대졸로 해봤자 좋은 곳에 갈 수 없다면 삼성중공업이나 포스코 같은 회사에 고졸 취업을 하면 안 되느냐"면서 "고졸 생산직 연봉은 3000만원 이상으로, 좋고 안정적"이라고 적고 있다.

전남의 한 사립대를 다니던 윤모(25)씨는 군대를 다녀온 뒤 3학년으로 복학했던 2011년 초에 자퇴했다. 이유는 지방의 한 공기업 '고졸 채용(사무직)' 전형에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윤씨는 학점도 나쁜 편이 아니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이 취업을 못 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자퇴 후 '고졸 채용' 지원을 결심했다. 윤씨는 그해 입사에 성공한 후 작년부터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해 '사이버대'를 다니고 있다. 윤씨는 "웬만한 대학 졸업장은 받아봤자 취업하는 데 큰 도움도 안 되는데 굳이 대학을 끝까지 다닐 필요가 있나 싶었다"며 "아무래도 대학에 안 간 사람들과 경쟁하니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은 지난 2007년 4월 채용한 고졸 생산직군 입사자 400명 가운데 4년제 대학을 나왔으면서도 학력을 고졸로 낮춰 지원한 5명을 적발해 한 달 뒤 퇴사시키기도 했다. 당사자들은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하소연했고, 회사 일각에서도 "취업난이 오죽 심하면…" 하는 동정론도 있었지만 회사는 "4년제 대졸자를 받으면 고졸자들이 피해를 본다"면서 퇴직 조치를 결정했다. 이후 현대차는 '허위 학력 기재 시 퇴사 조치할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