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동백열차 / 송찬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8. 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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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열차


송찬호

 

 

지금 여수 오동도는
동백이 만발하는 계절
동백 열차를 타고 꽃구경 가요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인 삼월의 신부와 함께


오동도, 그 푸른
동백섬을 사람들은
여수항의 눈동자라 일컫지요
우리 손을 잡고 그 푸른 눈동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요


그리고 그 눈부신 꽃그늘 아래서 우리 사랑을 맹세해요
만약 그 사랑이 허튼 맹세라면 사자처럼 용맹한
동백들이 우리의 달콤한 언약을 모두 잡아먹을 거예요
말의 주춧돌을 반듯하게 놓아요 풀무질과 길쌈을 다시 배워요


저 길길이 날뛰던 무쇠 덩어리도 오늘만큼은
화사하게 동백열차로 새로 단장됐답니다
삶이 비록 부스러지기 쉬운 꿈일지라도
우리 그 환한 백일몽 너머 달려가 봐요 잠시 눈 붙였다
깨어나면 어느덧 먼 남쪽 바다 초승달 항구에 닿을 거예요


 

 
(『붉은 눈, 동백』. 문학과지성사. 2000)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