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모과 - 서안나
모과
서안나(1965~ )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다.
[시평]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조금은 추워 보이는 파란 하늘 한 귀퉁이, 모과가 매달려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푸른 하늘에 파묻히듯 매달려 있는 모과. 모과는 먹기도 어려운, 과일 아닌 과일이다. 때로는 차로 만들어 먹기는 하지만, 그 향기를 즐기는 사람이 오히려 많다.
그러한 모과를 바라보며, 바라만 보다가, 그 사람의 향기만 맡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만 모과마냥 꺼멓게 썩어버린, 그런 첫사랑, 누구에게나 있지 않았을까. 모과마냥 울퉁불퉁 못생긴, 그러나 은은한 향기를 지닌 그런 사람. 마음 어딘가 묻어둔 첫사랑의 그 사람. 그 사람이 문득 생각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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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 서안나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 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당신이라는 시간 / 서안나
상처는 상처를 이끌어 낸다 상처를 껴안으니 마음이 깊어진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가장 멀리 있는 사람
머리 감으면서도 전화벨 소리에 귀 기울이던 찬물 뚝뚝 떨어지던 계절들 이마에 재를 묻히고 나는 사랑의 서책(書冊)을 덮었다 젖어드는 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한다
노트에 나뒹굴던 파탄의 문장들 당신은 구름처럼 날아오르는 비승비속의 캄캄한 우주 해독될 수 없는 이별로 세상은 높고 쓸쓸하다
한 입술이 두 입술이 되고 두 몸의 슬픔으로 이별을 열고 나왔다 월요일의 당신은 멀리 있고 수요일의 나는 낯설다
얼굴을 감싸면 낮에도 무거운 별이 뜬다 당신이라는 계절이 잠시 다녀갔다 반어법처럼 고요하다 손바닥이 젖은 이번 生은
『시평』2010,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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