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 쓸수록 행복해지는 일을 한다는 것 멋글씨 예술가 고은영

“예뻐서요. 그냥 예뻤어요.” 멋글씨 예술가 캘리그래퍼의 순화어 고은영늘봄에게 왜 멋글씨캘리그래피의 순화어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림 같기도 하고 글자 같기도 한 것이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장면이 너무 신기했다고. 멋글씨에 매료된 때는 2005년. “그때는 멋글씨를 하는 사람이 다 해서 백 명? 지금은 멋글씨 작가만 해도 그 몇 배가 된 것 같아요.” 마음에 품었던 글씨를 쓴 작가에게 무작정 연락해서 배움을 청한다. 그러고 나서 서예와 문인화를 따로 배웠다. 그러나 작업을 의뢰하는 곳은 없었다. “전문가반을 들으면 전문가가 되는 줄 알았는데 전문가가 안 되는 거예요.”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첫 작업 의뢰가 온다. 아마추어가 프로가 된 순간이었다. 2010년부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이제는 꽤 바쁜 작가가 되었다.
첫 번째 일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프로로 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왜? 고은영이 하는 작업은 기존의 멋글씨의 흐름에서 벗어나 보이는 면이 있다. 그녀의 작업이 감성적이고 화사한 데다 일러스트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 그녀가 이 일을 그저 흥에 겨워 취미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첫 번째 일을 시작한 후 이런 그녀의 작업 방식은 고은영만이 할 수 있는 게 되었다. 멋글씨로 쓴 글자의 요소 중의 하나를 그림으로 강조하기도 하고, 자신이 쓴 멋글씨에 어울리는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이기 때문. 작가는 말한다. 자신이 글씨와 그림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깊이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그녀는 자신을 탐색하는 시기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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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와 싸우고 싶다고 했다. 손이 아프도록 써 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작업에 어떤 요소를 도입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다고 했다. 아주 단순한 질문을 했다. 글씨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붓펜으로는 백날 써도 소용없어요. 좋은 붓으로 써야 해요.” 그렇다면 좋은 붓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라고 했다. “나랑 친해질 붓이요.” 고은영 작가는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그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써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종이에 써야 먹이 번지는 느낌을 알 수 있어요. 신문지처럼 안 번지는 종이에 쓰면 안 늘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덧붙인다. “글씨는 아주 천천히 늘지만 아주 빨리 퇴보하기도 해요." |
멋글씨는 서예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얼마나 같고 다를까? 서예는 문방사우가 있어야 한다. 먹, 벼루, 종이, 붓. 여기에 멋글씨는 한 가지를 더해 문방오우라 부른다. 컴퓨터다. 문방사우를 가지고 전통적 방식으로 쓴 글씨를 스캔해 컴퓨터로 작업한다. 글씨의 색을 바꾸기도 하고 일러스트를 넣기도 하는 것. 또 이것들이 다르다. 서예는 정확한 운필법으로 써야 하지만 멋글씨는 자기 흥에 겨워 쓸 수 있다고 했다. “서예는 정해진 글자를 정해진 방식으로 따라 쓰는 거잖아요. 멋글씨는 쓰는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서예가 수양이라면, 멋글씨는 발산이랄까요?” 그녀는 넓은 책상에 여러 장의 종이를 펼쳐 놓고 글씨를 쓴다. “신기해요. 한 번에 되기도 하고 백 번 해도 안 될 때가 있어요.”
최근에 했다는 작업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고은영은 홍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무가지의 표지를 ‘화양연화’라는 글자로 채웠다. 왕가위가 만든 동명의 영화와는 관계가 없어 보여 의도를 물었다. 그녀가 우연히 보게 된 ‘분리수거’라는 그룹의 공연과 공간을 채우던 사람들 때문이라고 했다. “가만히 보면 홍대 앞은 빛나는 순간들로 늘 아름답게 북적이고 있거든요. 이들이 저마다 화양연화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따뜻한 그녀에게 해 보지 않은 작업 중 하고 싶은 것을 물었다. “화선지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길도 그렇고 벽도 그렇고 비어 있는 데만 보면 글씨를 쓰고 싶어요. 말이 안 되는 걸 알지만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글자를 써 준 경험에 대해 말했다. “신세계였어요. 사람들이 글씨를 받고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제 글씨가 뭐라고.” 글씨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그녀가 위대해 보이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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