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우리속담22 섣달이 열아홉이라도 시원치 않겠다

밀린 원고가 해를 넘겨 독촉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양력 12월 31일에 마무리하지 못했던 일들을 섣달 그믐날 마무리하겠다 마음먹었는데 낼모레 설을 앞두고도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네요. ‘섣달이 열아홉이라도 시원치 않겠다’는 옛말의 위력을 실감하는 오늘입니다.
섣달 그믐날은 어딘지 모르게 들뜨고 설레는 시간입니다. 소풍날보다는 소풍 전날이 더욱 설레듯 설의 풍성함과 흥겨움은 설 하루 전날 그믐날 밤에 최고조에 달합니다. 집안 막내였던 저는 언제나 떡 심부름을 맡았었는데, 그믐날 아침 해도 뜨기 전 새벽에 어머님이 주신 쌀과 큰 대야를 들고 방앗간에 가 미리 줄을 섰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방앗간 문 앞에 늘어선 긴 줄에 우리 집 쌀이 든 대야를 세워 놓고 언니들이랑 목욕을 다녀오면 방앗간 주인 아주머니께서 곱게 불린 쌀을 빻아 시루에 얹어 놓곤 하셨지요. 설날 추억으로 제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방앗간 떡시루 위로 모락모락 올라오던 하얀 떡김의 기억입니다.
이제 방앗간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 되었습니다만 예전에는 집에서 떡을 만들곤 했지요. 설날 음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떡국이어서 그런지 그믐날 준비하는 음식 가운데 으뜸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가래떡이 아닐까 합니다. ‘섣달 그믐날 흰떡 맞듯’ 한다거나, 물색없는 사람을 가리켜 ‘섣달 그믐날 시루 얻으러 다닐 놈’이라고 일컫는 속담이 모두 여기서 유래한 말들이겠지요.
섣달 그믐날은 앞선 일의 매듭을 짓고 새 매듭을 만들 준비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옛날에 시집 못 간 노처녀가 섣달 그믐날 한 해가 또 가는 것이 서러워 넋을 놓고 앉았다가 기르던 개에게 밥을 한정 없이 퍼 주었다는 데서 유래한 속담으로 ‘ 섣달 그믐날 개밥 퍼 주듯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하고 싶은데 또 시기를 놓친 채 한 해를 보내야 하는 노처녀의 심정이나 취직 못한 청년의 심정이나 대학 못간 재수생의 심정이 매한가지겠지요. 그래도 옛 매듭은 옛 매듭, 지금은 새로운 매듭을 지어야 할 시기입니다.
해를 넘긴 묵힌 일들은 고스란히 새해의 과제가 됩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에는 기대도 많고 소망도 많지요. 또 그만큼 다짐하고 계획하는 일들도 많아집니다. ‘새해 못할 제사 있으랴’는 속담도 모두 이런 까닭에 전해오는 옛말이겠지요.
바라는 일이 많아지는 만큼 인간 세계를 초월한 성스러운 대상에게 빌어야 할 일도 많아지고 그만큼 제사도 많아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입니다. 묵은 소망을 모두 풀어 낼 수 있다면 어떤 제산들 지내지 못하겠습니까?
신화학자 엘리아데Eliade는 인류는 오래도록 모든 우주가 해마다 새롭게 거듭난다는 믿음을 가져 왔다고 말합니다. 세시 절기로서 설날의 의미는 한 우주가 쇠퇴하고 다시 새로운 우주로 거듭나는 시간, 곧 우주가 생성의 에너지가 넘쳐나던 바로 그 태초의 시발점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는 데 있습니다. 신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생성과 시작은 반드시 소멸과 쇠퇴, 곧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쇠퇴에서 생성으로의 변화는 무질서의 카오스chaos 상태에서 질서가 형성되는 코스모스cosmos 상태로의 전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코스모스로의 전환을 앞둔 카오스의 시기에는 의도적인 일탈과 난장이 만들어집니다. 모든 규칙과 규범,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을 만드는 것이지요. 이것은 사회적 질서와 규범에 갇혀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주기적으로 숨통을 틔워 주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때문인지 옛사람들은 섣달 그믐날 매우 극심한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경북 포항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섣달 그믐날 가장 어려운 사람들끼리 평상시에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장난을 치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섣달 그믐날 밤에 시누이가 올케 언니 젖꼭지에 실을 묶어 방고리에 걸어 놓는다든지 형수가 시동생의 성기에 실을 매어 실끝을 못에 걸어놓기도 했다는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당시에도 평상시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올케 언니는 얼마나 어렵고, 또 시동생은 얼마나 어려운 상대인가요? 일년에 단 하루, 섣달 그믐날 밤에만 허용된 장난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 장난이 얼마나 짜릿한 놀이였겠습니까?
‘정월 초하룻날 먹어 보면 이월 초하룻날 또 먹으려 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정월 초하룻날만큼은 기분 좋게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얼마나 좋으면 달마다 하루쯤은 그렇게 먹고 싶겠습니까? 여전히 먹을 것을 걱정하는 이웃이 있고, 먹을거리 염려 없이 사는 사람들 중에도 걱정거리 없이 맘 편히 먹을 수 있는 이웃은 많지 않습니다. 부디 설날 하루만이라도 걱정거리 없이 마음 편하게 즐거운 한때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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