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시인의 시와 산문] 6개월은 / 정선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1. 28. 16:41
728x90

6개월은 / 정선희
180번뇌
[69호] 2014년 01월 01일 (수) 정선희 jungwal@hanmail.net

6개월은 

 

정선희 

 

 

6개월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6개월 동안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하고 S라인을 만들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미팅을 세 번 하고 두 번 차이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수술을 세 번 하고 병실을 아홉 번 옮기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화를 내다가 매달리다가 지쳐서 잠이 들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마취 주사를 맞고 머릿속 나사를 조였다 풀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오늘도 죽고 내일도 죽으며 모래시계로 흘러내리고

 

6개월은 너무 길기도 하고
6개월은 너무 짧기도 하고
6개월은 한 줌 재가 되고
바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

 

아침마다 저승사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찾아와
진료카드를 내밀며 속삭이지
한 방에 끝내줄까?
6개월 동안 날마다 죽여줄까?

 

 

180번뇌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다. 처음에 6개월이란 말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지? 6개월은 내가 비밀리에 친구의 애인을 사귄 시간이고, 6개월은 내가 남자를 바꾸는 데 걸린 시간이고, 6개월은 내가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감기약을 먹고 전전긍긍한 시간이고…… 나는 밑도 끝도 없이 6개월을 물고 늘어졌다. 항암치료를 하면 살 수 있나요? 의사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가는 사람과, 암 선고를 받고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나을 것인가? 나는 후자의 경우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의 시간은 더 많겠지만 적어도 삶을 정리할 시간은 벌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아버지가 남은 삶을 잘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몇 달 더, 아니 몇 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고통의 연장에 불과한 것이지 정상적인 삶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가 온전한 정신으로 마지막 남은 시간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였다. 가족이야 어떻게 되든 당신 목숨만 연장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태세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실망스러웠다.마음속으로 따졌다. ‘아버지!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요! 살아서 누굴 더 애먹이려고 살고자 하시나요? 가족들에게 뭘 더 바라시나요? 엄마를 이만큼 부려 먹었으면 됐지. 동생한테 그만큼 빚을 지웠으면 됐지. 얼마나 더 부담을 주려고요. 아버지! 이젠 제발 떠나주세요. 우리도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어요!’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악역을 맡기로 했다. 동생들과 어머니는 너무 순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대체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으니 항암치료를 받지 말자고 했다. 아버지는 세 번 물어본 뒤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문안 온 친척들의 위로금을 꼬박꼬박 챙겼고, 병실을 옮길 때마다 서류봉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 서류봉투에는 앞으로의 사업계획과 지출명세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허공에 집을 짓는 사업가였다. 말로는 안 되는 사업이 없었고, 사업을 하다가 사기도 당하고 믿는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돈 한 푼 못 건지고 손 털 때가 많았지만, 당신은 늘 ‘오늘’만 절망하고 내일은 또 다른 사업을 구상하느라 의욕에 넘쳤다. 아버지 마음속엔 언제나 튜브로 만든 희망이 살고 있었고, 때때로 물에 빠지면 즉시 달려와 구해주곤 했다. 나는 아버지를 통해 희망이란 단어가 참으로 징글징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희망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젊은 날 아버지는 문학청년이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그 시절에는 드물게 대학까지 나온 아버지는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했다. 오죽하면 미모의 젊은 엄마가 그 말에 속아 결혼을 했겠는가. 오죽하면 어머니가늘 같은 말에 속아 평생토록 사업 자금을 대주었겠는가. 언젠가는 당신의 삶을 글로 쓰고 싶다는 아버지, 그러나 머리만 있고 손발이 없는 아버지, 시작은 거창한데 마무리를 못 했다.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아버지, 그래서 늘 현실에게 걷어차이곤 했다. 아버지의 손때 묻은 시집을 읽고 자란 나, 나도 아버지처럼 문학을 좋아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나도 아버지처럼 약속을 못 지킬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두려웠다. 나도 커서 아버지처럼 무능하면 어쩌나, 시험을 잘못 보거나 면접에 떨어질 때면 그때마다 제일 먼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이렇게 떠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조금은 미안함을 남기고 떠나야 나중에 자식들이 그를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6개월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적당히 병원비도 깨어 먹고, 적당히 어머니 병수발도 받고, 적당히 자식들 효도도 받고. 이만하면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다. 일평생 한 번도 돈을 벌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호주머니 속에 돈 떨어지는 날은 없었다.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은 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먼저 쓰러져야 할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당신은 아파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무슨 염치로 그렇게 훌쩍 먼저 떠난다는 건가. 누구보다 오래 살아서 나중에 엄마를 보살피기를 바랐다. 그나마 젊은 날 당신이 엄마에게 지은 죄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6개월 뒤, 아버지는 마치 날을 받아 놓은 사람처럼 떠났다. 아버지의 의사와 무관하게 기독교 장례식이 치러졌다. 어머니는 화장해서 뿌리자고 했다. 나는 그것만은 안 된다고 했다. 화장장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울음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 쉽게 잊히는 것이 미안했다. 어디에도 당신의 빈자리는 없었다. 엄마도 동생도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듯 표정이 밝아졌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목백일홍 필 무렵에 떠난 아버지, 나는 해마다 그 꽃이 필 때면 그를 그리워하기로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나를 용서하실까?

 

아버지가 떠난 뒤에 나는 죄인이 되었다. 6개월이란 시간이 자꾸 나에게 묻는다. 6개월 동안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6개월은〉이란 시를 쓰고 나는 좀 홀가분해질 수 있을까, 첫사랑을 고백한 사람처럼 마음이 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빨리 고백하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라는 짐, 아버지라는 열등감, 아버지라는 죄의식, 나는 어두운 아버지를 벗고 환한 대낮이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정선희 jungwal@hanmail.net / 2012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 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재 논술학원 운영.

 

—《유심》201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