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춘기획] 묵매(墨梅)에 쓰다 / 이선이 | ||||||||||
| 시인이 사랑한 봄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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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紅梅)에 젖다
곽화는 내 큰어머니의 이름이다. 이십 세기 초의 촌구석에서 태어난 여성임에도 ‘화’라는 멋진 외자 이름을 가졌다. 행동이나 말무새 모두가 하나 버릴 데 없는 양반이셨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남살댁이라 불렀다. 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산청군의 남사마을에서 시집을 와 붙여진 택호였다. 내 유년은 그녀의 치마폭과 함께했다. 그녀는 이십 대 초반에 혼자되어 평생 과부로 수절했다. 그녀보다 조금 먼저 과부가 된 할머니를 혼자 모시는 게 마음에 걸렸던지 부모님은 도시로 이사하며 나를 큰댁에 맡겼다. 다섯 살 때부터 나는 할머니와 큰어머니 그렇게 셋이 살았다. 마을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 깊고 물 맑은 청정지역이었다. 하지만 이런 풍광보다는 큰어머니야말로 내 유년의 청정지역일지도 모르겠다. 이 무의식의 흐릿한 풍경 하나를 펼쳐보면 이렇다.
시골의 겨울밤은 길어서 자다가 한두 번은 깨어나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무섬증이 많던 나는 화장실 가는 일이 두려워 한밤중에 요기를 느끼면 새벽까지 오줌을 참으며 선잠을 자곤 했다. 어느 겨울인가는 눈이 많이 내렸다. 지리산에 근접해 있어 그랬는지 남쪽이지만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새벽에 잠을 깨보니 큰어머니는 문고리에 숟가락을 꽂아두고 앉은 채 밤을 새우고 있었다. 달이 환한 밤이라 큰어머니의 작은 체구가 달빛 속에 다 젖어 있었다. 그 시절의 겨울밤이면 과부 따먹으러 다니는 사내가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마을에 퍼지곤 했다. 어느 해 봄에는 그런 큰어머니와 그녀의 친정집에 함께 갔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봄바람이 드세서 돌풍이 일 때면 큰어머니는 치마로 나를 감싸주었다.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저물녘에서야 남사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는 고혹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매화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큰어머니는 유독 붉은 홍매화 그늘에 한참을 서 계셨다. 그때 붉은 꽃잎이 흩날렸는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여든을 넘겨 노인요양원에서 그녀는 홀로 영면하셨다. 아직은 매화도 기억도 시리고 아프다.
이선이 budatree@khu.ac.kr / 1991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으로 《서서 우는 마음》 평론집 《생명과 서정》 《상상의 열림과 떨림》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유심 홈> http://www.yousim.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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