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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심문학토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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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스스로 주장하거나 타인에 의해 오해되는 모습들을 끊임없이 깨뜨려 나가면서 미지의 새로운 ‘나’를 생성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나’ 자신을 이해하고자 시 쓰기를 시작했지만, 시 쓰기의 이유나 질문이 점점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로 옮겨간 셈이지요.
일시 : 2014년 1월 15일 오후 6시 30분 | 장소 : 유심아카데미 세미나실
나희덕 시인은……
● 1966년 충청남도 논산 출생. ● 연세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등과 산문집 《반 통의 물》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접시의 시》 등이 있다. ●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지훈상 등 수상. ●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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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2014년 첫 번째 유심문학토크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연하게도 청마의 해인 올해 첫 손님은 말띠이시고, 최근 일곱 번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출간하신 나희덕 시인입니다. 새로운 시집이 나온 만큼 오늘 이야기가 풍성할 것 같습니다. 시인을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오늘은 좀 특별하게 나희덕 시인께서 새로 나온 시집에 수록된 시 한 편을 읽어주시는 것으로 유심문학토크를 시작합니다.
▶ 안녕하세요. 어떤 시를 읽을까 생각하다가 이번 시집에 실려 있는 〈뿌리로부터〉를 골라봤는데요. 제 첫 번째 시집이 《뿌리에게》였잖아요? 올해가 제가 시인이 된 지 25년이 되는 해인데, 그동안 시 쓰며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늠해 본 시입니다. 등단작 〈뿌리에게〉와 25년 후에 쓴 〈뿌리로부터〉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제는 뿌리보다 줄기를 믿는 편이다
줄기보다는 가지를, 가지보다는 가지에 매달린 잎을, 잎보다는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믿는 편이다
희박해진다는 것 언제라도 흩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뿌리로부터 멀어질수록 가지 끝의 이파리가 위태롭게 파닥이고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뿌리로부터 달아나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뿌리로부터 달아나려는 정신의 행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허공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뿌리 대신 뿔이라는 말은 어떤가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를 밀어올리면 감히 바람을 찢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소의 뿔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뿌리로부터 온 존재들, 그러나 뿌리로부터 부단히 도망치는 발걸음들
오늘의 일용할 잎과 꽃이 천천히 시들고 마침내 입을 다무는 시간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미 허공에서 길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사람 — 〈뿌리로부터〉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 시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희덕 시인의 시에 대한 생각들 혹은 새 시집과 관련된 말씀 듣고 이야기를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뿌리에게》라는 첫 시집이 나왔을 때, 제 시세계를 표현한 단어들은 ‘따뜻함’ ‘연민’ ‘사랑’ 이런 거였지요. 전통적 서정시의 문법에 충실하고 자연 친화적인 상상력이 강한 편이었고요. 그런데 그런 수사들이 반복적으로 저를 따라다니는 것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그래서 이후의 시적 여정은 그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고 서정시의 발성법을 확장시켜 가는 데 바쳐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완성도 높은 시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전의 시집과 변별된 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습니다. 의도된 급진적 변화보다는 삶에서 자연스럽게 숙성된 시적인 변화가 더 믿을 만하다고 여겨왔지요. 점진적 변화를 거쳐 왔지만, 그래도 〈뿌리에게〉와 〈뿌리로부터〉를 비교해보면 제 시의 출발점과는 상당히 먼 자리에 와 있구나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대학 시절과 등단 초기인 1980년대는 역사적 상황이 문학적 자아를 압도하던 시대였고, 개인의 내면에 대한 탐구가 억압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첫 시집을 내고 절감한 것은 ‘내가 나를 참 모르는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나는 누구인가’ 그것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두 번째 시집이 개인적 내면의 세계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그런데 다시 질문이 생겼습니다. 과연 ‘나’라고 말해질 수 있는 고유한 존재가 있기는 한 것일까. ‘나’라고 상정된 또는 인식하고 있는 어떤 것이야말로 의심하고 회의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오히려 나를 이해하고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고 스스로 주장하거나 타인에 의해 오해되는 모습들을 끊임없이 깨뜨려 나가면서 미지의 새로운 ‘나’를 생성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시 쓰기를 시작했지만, 시 쓰기의 이유나 질문이 점점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로 옮겨간 셈이지요. 이 질문은 2000년대 이후에 한국시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인 ‘다시, 서정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일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 특집에서 다루어지기도 했고 ‘신서정’이나 ‘다른 서정’과 같은 용어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시인들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화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시적 문법과 발화 방식들을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세계의 균열과 모순들을 단순화시키지 않으면서 그것을 생생하게 담아낼 방법 말입니다. 그런 고민은 저뿐 아니라 여기 계신 시인들이 폭넓게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시집을 보니까, 의도한 것은 아닌데 ‘나’라는 주어가 상당히 줄었어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바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린 시가 많더라고요. 또, 시적 화자가 공존하거나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혼재된 경우가 적지 않아요. ‘나’로부터 벗어나는 방식을 통해 자아와 타자 사이에 다른 길을 내보려고 했던 흔적들이지요. 새로운 시적 자아를 생성해가는 과정에서 자주 떠올렸던 비유가 있는데요. 들뢰즈와 가타리가 함께 쓴 《천 개의 고원》을 보면, 단편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삶의 선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절단선, 파열선, 단절선. 이 세 가지 선이 서로 가로지르고 연결되면서 우리의 삶이 이어져간다는 것이지요. ‘절단선’은 외부에서 오는 갑작스러운 충격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고 예상하지 않았지만 우리 삶에 들이닥친 거대한 충격들, 파격들을 말하지요. 그에 비해 ‘파열선’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대체로 ‘절단’의 결과나 영향으로 생겨납니다. ‘파열선’은 조금씩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러나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어떤 균열이나 쪼개짐 같은 것이죠. 우리가 겪는 갈등들은 외부적인 것들과 내면적인 것들로 나눌 수도 있고, 그 둘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문학적인 문제 상황을 만들어내지요. 우리가 쓰는 시나 소설은 결국 그런 선들의 마주침과 이어짐으로 단순화시켜 볼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단절선’은 ‘절단’과 ‘파열’을 겪으면서 과거로부터 스스로 단절하는 일종의 선택을 의미합니다. 시에서도 결국 이 세 가지 선들의 작용이 시인의 내면에 일어나는 변화를 촉발시키게 되는 것이지요.
흔히 상처가 없이는 새로운 창조도 발견도 없다고 말하는데, 시집을 보면 그 시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있기 마련이죠.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에는 신년에 읽기에는 조금 무겁고 어두운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시집을 쓰는 몇 년이 저에게는 내면적으로 침잠해 있던 시기였고, 가까운 사람들을 여럿 떠나보내는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제 삶의 뚜렷한 절단선들이 계속적인 파열들을 일으켰고, 그런 파열이 일상적 자아를 통해 직접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들 속에 무수한 균열로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이 시들을 씀으로써 그 고통과 경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이 제목처럼 ‘돌아온다는 것’이 회귀도 되지만 회복을 통한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 비록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변화라는 것이 얼마나 큰 고민과 성찰을 통해 가능한 것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돌아가시면서 나희덕 시인의 새 시집을 읽어보시면 편편들을 통해 시인의 지금 이야기가 더 잘 이해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은 어제 나온 따끈따끈한 시집인데요, 어떤 분에게 처음으로 드렸나요?
▶ 어제 출판사에 가서 증정본 사인을 했는데, 마침 문지 1세대 모임을 하는 날이더군요. 덕분에 제 스승이신 정현종 선생님을 만나 새 시집을 전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 필경사이셨던 아버님께서 지금 창작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제 아버님께 시집을 드리셨을 때, 어떤 말씀을 해주시던가요?
▶ 제 부모님은 종교적인 성향이 강하신 편이에요. 두 분이 산속의 공동체에서 만나 결혼하셨고 평생을 성직자에 가깝게 사셨지요.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시고 틈만 나면 성경을 필사하세요. 문학청년이셨던 아버지는 글을 다시 쓰셨고, 에세이집을 두 권 내시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제는 이 시집을 읽으시고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았어요. 몇 편의 시를 통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동생의 죽음을 다시 떠올리게 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또, 종교적인 시각에서 볼 때, 제가 대긍정의 문학을 하지 않고 비관적인 시선으로 사람들을 침울하게 만드는 글을 쓰는 게 못마땅하신 듯했어요. 부모 입장에서 딸을 안쓰럽게 여겨 그러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맘이 내내 무겁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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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한편으론 나의 부모님이 자식의 시를 읽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시인에겐 아주 큰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앞서도 〈뿌리에게〉에서 〈뿌리로부터〉를 호명하시면서 25년의 시적 여정을 말씀해주셨는데요, 시인에게 ‘뿌리’는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 독자들에게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제 시에 ‘나무’가 많이 나오느냐는 거예요. 실제로 나무는 제가 지향하는 삶의 양태를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상징물처럼 여겨져요. 나무가 되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드물게 찾아오긴 하지만 아주 나지막하고 고요해지는 순간에는 제가 한 그루 나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때는 붉은 피 대신 맑은 수액이 도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새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의 발화가 인간의 언어보다 더 완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시에 식물 이미지가 많고 동물 이미지가 드문 것은 그래서인가 봐요. 나와 봤자 곤충이었어요.(웃음) 그런데 이번 시집에는 ‘뿌리’ 대신 ‘뿔’이라는 동물적 상징이 등장하고, 표제작인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도 상당히 큰 동물인 ‘말’이 등장합니다. 참 ‘여우’도 나오네요.(웃음) 시집을 보면서 ‘아, 이제 내 안에 어느 정도의 동물성이 생긴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나무 얘기로 돌아가면, 나무는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하늘을 향해 초월과 상승의 의지를 보여주는 구도적 표상이지요. 특히 ‘뿌리’는 나무가 수직적인 상태를 버티게 해주는 근간이 되는 부분이잖아요? 세계의 중심, 영원한 것, 이런 것들에 굳건하게 신념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시절에는 ‘뿌리’에 대한 동경과 친화력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30~40대를 통과하면서 더 이상 인간이나 세계에 대해 낙관적인 믿음을 갖기가 어려워졌어요. 이번 시집에서도 ‘사라진다’ ‘흩어진다’ 같은 동사들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갈수록 소멸이나 죽음에 대한 지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뿌리에게〉에서 여격조사 ‘~에게’는 어딘가를 향해 있는 상태잖아요? 그만큼 대상과 하나 되고 그 대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주지요. 반면 〈뿌리로부터〉에서 탈격조사 ‘~로부터’는 대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쳐서 불안정하지만 더 역동적인 세계로 나아가려고 하는 지향을 보여줍니다. 대상에 대한 태도 변화뿐 아니라 ‘구심력에서 원심력으로’ 나아가는 동력의 변화도 이런 조사의 차이에서 나타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얘기하다 보니 제 시를 너무 남의 시처럼 분석하는 것 같네요.(웃음)
— ‘~에게’와 ‘~로부터’ 사이의 간격이 상당히 큰 시세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이전의 나희덕 스타일, 예를 들면 따뜻하고 단정하고 여성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시에 대한 독자들의 애정이 매우 컸잖아요? 이번 시집을 보면 그런 이전의 시적 특징이 많이 사라져서 독자들이 좀 당황할 것 같기도 하고 서운해 하실 것 같기도 해요. 시인의 마음은 지금 들었는데요, 독자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혹시 예상해 보셨나요?
▶ 그 문제는 객석의 여러분께 여쭤볼까요?(웃음) 이렇게 안목이 높은 시인들을 한 자리에서 뵙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조언이든지 주문이든지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 이런 나희덕 시인의 시적 변화, 그것은 삶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의 변화가 이전의 시세계와 견주어봤을 때 어떠신가요?
박수연 시인: 제가 시집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최근 문예지에 나온 시들을 보면서 제가 초기에 시를 공부할 때 텍스트로 삼았던 시들로부터 많이 멀어져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나희덕 시인도 새로운 모색을 정말 많이 고민하시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언젠가 〈풀의 신경계〉라는 시가 한 잡지에서 리뷰가 된 것을 봤어요. 풀을 마치 동물로 본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한번은 제 시집이 나오고 나서 나희덕 시인과 통화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선생님 시가 많이 변하셨어요.” 하니까 나희덕 시인께서 “저도 변해야지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건 한 개인의 삶이 변화하는 것도 관계가 있겠지만, 또 시를 쓰는 사람은 누구나 이전의 시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이런 시인의 변화가 섭섭하다기보다는 아주 관심 있게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를 지켜보고 싶습니다. 〈뿌리에게〉라는 시는 너무나 좋아서 상당히 여러 번 읽었고 외우다시피 한 시인데요. 이번 시집에서도 분명히 배울 것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나희덕 시인의 팬이시군요.(웃음) 이러한 시적 변화를 아주 좋게 보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시인의 말씀대로 이번 시집에 죽음의 이미지도 많고 뭔가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인데요. 분위기를 좀 바꿔서 다른 이야기를 여쭤볼까 합니다. 대학 동기이자 문우이신 유성호 평론가께서 사석에서 나희덕 시인은 감성적이기보다 논리적인 편이어서 자신이 시인이 되고 나희덕 시인은 평론가가 될 줄 알았다고 말씀하신다고 전해 들은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데뷔 전 문청 시절 얘기 좀 해 주세요~^^
▶ 실제로 유성호 선생은 우수 어린 눈빛을 지닌 문학청년이었어요. 저는 시인이 아니라 국어학자가 되려고 국문과에 들어갔고 논리적인 성향이 강했고요. 일주일에 네다섯 개의 세미나를 각기 다른 주제로 할 만큼 창작보다는 인문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 더 컸습니다. 시는 입학 때부터 꾸준히 썼지만 연세문학회에 들어간 것은 2학년 2학기가 되어서였지요. 일반적으로 시인들은 문과 체질이라고 하는데, 저는 중·고등학교 때 국어 못지않게 수학, 과학을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예반’에 들어갔지만 치기 어린 문청의 관습에 거부감을 느껴 한두 달 만에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들어간 곳이 생물반이었어요. 생물 표본 만들고 실험하고 관찰하고 그런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제 시에 등장하는 자연물은 책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생물실에서, 또는 땡땡이치고 혼자 걸어다니며 얻어진 이미지들입니다. 길에서 해찰하며 무언가 관찰하기를 좋아했고, 궁금한 게 있으면 그것을 끝까지 해부해보거나 파보거나 하면서 사물들의 원리나 현상을 짐작해보곤 했지요. 아마 시를 안 썼으면 저는 과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관찰과 해찰의 습관이 사물을 발견하고 묘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게는 예술적인 기질과 이론적인 성향이 공존하는 편이었지요. 저는 독서할 때도 과학책이나 철학책을 즐겨보고, 그것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변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 시집의 경우도 〈풀의 신경계〉는 들뢰즈의 ‘리좀’ 개념을 시적인 사유와 언어로 변형시켜 보려고 한 것이고요,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이라는 시를 쓸 때는 아메바에 대한 과학책들을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메바의 생태를 인간의 생태와 욕망, 사랑과 비교하면서 쓴 시이지요. 〈당신과 물고기〉는 《내 안의 물고기》를 읽으면서 얻어진 착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어둠이 아직〉은 ‘암흑물질’에 관한 시입니다. 물론 이런 지식을 생경하게 드러내서는 안 되지만, 시를 쓰기 위한 탐구는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시집이 특히 더 그런 것인가요?
▶ 예. 흔히 서정시인들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은 다분히 낭만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잖아요? 저의 경우는 감정적 동일화보다는 사물 자체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그것에 대해 공부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되 그 흔적을 없애면서 충분히 자기화해야 한다는 점이겠지요.
— 시인의 시 창작법을 말씀해주신 듯합니다. 나희덕 시인의 시는 아주 자연스러운 시적 상황과 논리를 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사전 작업을 철저히 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제가 감쪽같이 속은 걸 보면 공부의 자기화를 정말 잘 이루어내셨습니다.(웃음) 그런데 그런 작업은 보통 소설가들이 많이 하는 편 아닌가요?
▶ 제가 보기보단 나름 파란만장하게 살아와서(웃음) 가까운 친구들은 “네 삶을 그대로 쓰면 소설”이라는 얘기를 종종 해요. 주어진 운명의 몫도 있겠지만, 제가 지닌 기질이나 태도도 그런 상황을 자초하는 것 같아요. 겉으로는 침착하고 얌전해 보이는데, 실은 무모할 정도로 겁이 없고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요.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형이라서 일단 부딪히고 저질러놓고 보지요. 그렇게 낯선 것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문학적 계기나 성찰이 주어지곤 해요. 사람 관계에서도 아주 독특한 사람이나 상황과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소설가이자 제 동료인 이승우 선생님이 소설은 자기가 쓰는데 저는 늘 소설적 상황에 처한다고 하더군요.(웃음) 하지만 소설적 삶을 산다고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 경험을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싶은 욕구가 없지 않았고, 시가 잘 되지 않을 때 단편도 몇 편 써봤어요. 문제는 소설적 경험을 많이 하는 사람이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픽션(허구)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소설을 쓰기에 저는 경험에 너무 충실해서 일찍 의도를 들켜버려요. 모호성이 강한 시가 오히려 저에게는 숨기에 좋은 장르 같아요.
— 시로만 만나던 나희덕 시인의 솔직한 모습을 듣고 볼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웃음) 교사생활을 오래 하셨다가 대학원에 진학하신 걸로 아는데요, 안정적인 삶을 살다가 불안정한 삶을 선택하신 특별한 계기나 이유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 교사 그만두고 바로 대학원에 입학한 건 아니에요. 아까 제가 잘 저지르는 편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외부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일단, 합니다. 그리고 여기가 아니구나, 하면 미련 없이 떠납니다. 제가 진명여고를 그만둘 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요, 세계에 대한 전면적인 회의와 인간에 대한 실망을 느끼던 때라, 교실 문을 열 때마다 나 자신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데 뭘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리고 시인이 된 후로 한 달도 생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문학에 전념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경제적으론 불안정해도 말이죠. 어느 날 교실 문을 열다가 그런 생각이 강하게 치밀었고, 그 길로 교장실로 갔어요. 그때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또 바뀌니까 바로 갔죠. 조금 있다 방학하면 어영부영 넘어가니까요.(웃음) 교장실로 가서 이번 학기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말했어요. 제가 모범교사가 아니어서 교장 선생님이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교사를 그만두고 문학에 전념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집에 있으니 온갖 금융회사에서 전화가 걸려 오더군요. 직장은 그만두었는데 남편에게 어마어마한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어요. 운 좋게 ‘여성시대’라는 라디오프로그램의 구성작가를 하게 됐어요. 매일 두 시간짜리 생방송 원고를 쓰다 보니 시 한 편 쓰지 못하고 삶 전체를 저당 잡힌 채 살았어요. 다시 1년 만에 방송국 일을 대책 없이 그만뒀습니다.
그 무렵 버스를 타고 모교를 지나치게 되었는데, 갑자기 저기에 살 길이 있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본능적으로 드는 거예요.(웃음) 눈앞의 경제적인 문제보다 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홀린 사람처럼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들어갔어요. 그렇게 충동적으로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지만, 당장 입학금도 없었고 학위를 받아 대학에 취직하게 될 줄은 짐작도 못 했어요. 졸업한 지 10년 만에 돌아온 학교에서 공부를 참 달게 했고, 강의실이 누추한 현실에서 나를 건져준 방주처럼 느껴졌어요. 당시 그 선택이 현실적으로는 무모한 것이었지만, 내적인 요구에 충실하게 응했다는 점에서는 정확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 문자화된 이력만 봤을 때는 나희덕 시인은 막연히 안정적이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 과정에 앞서 말씀하신 들뢰즈의 그것처럼 절단선, 파열선, 단절선들이 엄청나게 교차해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무모함으로 보이는 선생님의 그 용기를 저도 갖고 싶네요.(웃음) 조선대에서 10여 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신데, 학생들에게 가장 시를 쓸 때 조심시키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요즘 문창과 학생들이나 젊은 시인들을 보면, 말은 화려한데 말의 거품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으로 직접 겪고 그것을 깊이 있게 내면화하는 과정이 충분치 못해서겠지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경험적인 시를 쓰라는 건 아니지만, 말과 싸우는 시간보다 시적 대상에 대한 실물적 감각과 사유를 기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권유합니다. 그래야만 자기만이 쓸 수 있는 시가 나오고, 독창적인 세계를 오래 일구어갈 수 있으니까요. 제 스승이신 정현종 선생님께서도 문학적 기교나 수사보다는 시인으로서 어떻게 보고 느끼고 감각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셨지요. 〈시창작교실〉이라는 시에 쓰신 것처럼, 선생의 몇 마디 말보다는 자기가 직접 몸으로 살아 있는 것들과 접촉하면서 싱싱한 혼란을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죠.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에 그치지 않고 ‘백문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문불여일주(百聞不如一走)’ ‘백문불여일혈(百聞不如一血)’이라는 것이지요.
— 그럼에도 강의를 할 때는 출석 여부나 수업태도 등 강의를 평가해야만 하잖아요? 만약 자신은 ‘백문불여일행’을 해야겠다고 강의에 오지 않는 학생이 있을 경우엔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학생이 그 상황을 잘 설명해내면 이해하고 봐줍니다.
— 학생의 절반 이상이 그러면 어쩌나 싶은데요?(웃음)
▶ 요즘 학생들은 오히려 너무 성실해서 문제인 것 같아요.(웃음)
— 동감합니다.(웃음) 한 인터뷰에서 보니까 “평생 일하고 쓰느라 고생한 나에게 은퇴 이후에 충분한 자유와 휴식의 시간을 선사한다”는 문장이 있었는데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으신지요?
▶ 그때 말한 ‘충분한 자유와 휴식’은 레저가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을 다 키우고 세속적인 의무를 어느 정도 치른 뒤에는 홀연 사라지고 싶습니다.(웃음) 대학 시절 제 꿈은 제도적인 결혼이나 직장에 매이기보다는 좋은 공동체를 찾아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근데 연애와 결혼을 너무 일찍 하는 바람에 그 꿈이 유예됐는데요, 그것을 늦게라도 실현해보고 싶은 바람을 아직도 지니고 있습니다. 저의 공동체적 지향은 남다른 성장기에서 형성된 것인 듯해요. 어머니가 보육원 총무로 일하셔서 저는 성장기 20년을 꼬박 보육원 울타리 안에서 지냈어요. 부모가 있지만 부모가 없는 아이들과 대가족을 이뤄서 집단생활을 해서인지 낯선 사람들과 함께 노동하고 밥 먹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스무 살부터 국내의 공동체들을 여기저기 다니며 얼마간 살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자본에 대한 의존 때문에 씁쓸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외국에 나갈 때도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공동체를 찾아다녔습니다. 2년 전 연구년으로 영국에 체류할 때 ‘부르더호프 공동체’에서 일주일 동안 생활하기도 했어요. 교파나 인종, 언어의 벽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자연 속에서 노동하고 하루에 두 끼 먹으면서 검소하게 살아가는 그 공동체를 경험했던 일을 토대로 〈신을 찾으러〉라는 시를 썼지요. 말년에라도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조용히 노동하고 명상하면서 늙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노년이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 멋진 계획이신데, 나희덕 시인이 홀연 사라지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웃음)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질문은 시인으로 롱런하는 비법 같은 것이 있으신지입니다.
▶ 글쎄, 그 얘기를 저에게 묻기는 아직 이른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저기 앉아 계신 신달자 선생님께 여쭤보는 게 어떨까요?(웃음) 다만 이런 생각은 합니다. 시와 삶을 어떻게 조율해 갈 것인가, 그것이 늘 시인들에게는 어려운 숙제지요. 제가 시를 쓰기 시작한 1980년대에는 ‘문학은 삶’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어요. 사는 것과 쓰는 것이 동의어처럼 여겨졌고, 문학의 윤리성이나 정치성이 문학의 심미성을 다 덮어버리는 시대였죠. 문학과 삶의 일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 둘의 관계가 너무 가까우면 시가 너무 뻔해지고 동어반복을 하게 되지요. 반대로 시와 삶이 아주 무관하게 취급되거나 인공적인 시법에만 골몰하게 되면 시가 공허해지거나 위선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적절한 거리와 탄력성을 유지하면서 시와 삶을 조율해가는 길을 늘 스스로에게 묻고 있습니다.
— 예, 오늘 재미있는 말씀 감사합니다. 객석의 여러분께서도 나희덕 시인에게 다른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청중과의 대화
청중 1 : 동인 활동을 쭉 해 오신 걸로 아는데, 동인 활동이 시작 활동에서 어떤 긴장감을 불러오는지요? 보는 이에 따라선 동인 활동이 어떤 폐쇄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제가 속한 ‘시힘’ 동인은 1980년대 중반 신춘문예 출신 시인들이 모여서 만든 동인인데요, 세대별로 새로운 시인들을 영입하면서 상당히 숫자가 많아졌습니다. 등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와서 이윤학, 박형준 시인 등과 2세대로 들어갔지요. ‘시힘’에서 만난 선후배들과의 인간적 교감은 큰 힘이 되었지만, 인원이 많고 세대의 간격이 넓다 보니까 동인으로서 응집력이라든가 활동성은 예전보다 약화되었어요. 1980년대가 동인지의 시대였던 것은 매체가 많지 않고 뚜렷한 지향이나 정체성을 지닌 그룹이 형성되던 시기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문학적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동인의 역할이나 성격도 달라지게 되었죠. 제 생각에 동인 활동은 등단 전이나 등단 초기에 서로가 문학적 거울이 되어주기 위해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엔 혼자 시를 써나가는 게 막막하고, 시를 발표할 때도 이게 시가 되는지, 시집으로 묶어도 될지, 판단하기가 어려우니까요. 각자 독립적인 힘이 생길 때까지 서로 돕는 것이지요. 하지만 폐쇄적인 섹트로서, 제도적인 권력으로서 동인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청중 2 : 워낙 작품이 좋아서 제가 많은 참고를 하는 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 중에 〈와온에서〉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엔 〈도솔가〉의 월명 노인도 등장하고 시상이 굉장히 확장되면서 저로선 매우 놀라운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런 상상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 전라도에 살면서 좋은 점은 광주에서 한 시간 정도만 가면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점이 지방에 사는 시인의 특권 중 하나지요. 와온도 광주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포구마을입니다. 일몰이 특히 아름다운 그곳으로 저를 처음 인도해 주신 분은 순천에 계신 곽재구 시인이세요. 순천만의 갯벌과 여수 방향의 와온 해변에 다녀온 후로 혼자서 이따금 그곳을 찾아갔죠. 의식이라도 치르듯 바닷가에 서서 지는 해의 기운을 느끼곤 했어요. 어떤 날은 너무 일러서 한참을 기다리고, 어떤 날은 늦어서 이미 해가 넘어가 버리고 그랬어요. 일몰을 제대로 만나는 날에는 정말 장관이에요. 붉은 해가 하늘만이 아니라 갯벌과 바닷물에 동시에 비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도솔가를 떠올렸어요. 아, 저 해를 멈추고 싶은데, 월명 노인이라도 있어서 저 해를 멈췄으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별로 어렵지 않게 시를 써내려갔어요. 자연에 대한 감흥이 한달음에 시를 완성하게 한 드문 경우지요. 저는 와온에 관해서 한 편 썼을 뿐이지만, 곽재구 선생님은 명실상부한 와온 임자십니다. 작년에 《와온바다》라는 시집을 내시기도 했고요.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실 텐데요, 남은 이야기는 간단히 다과를 하면서 나누도록 하지요. 이전의 시와 현재의 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전의 시 한 편 읽어보면서 이 자리 마무리하겠습니다.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생(生)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끄러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들고 일어나 물 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 〈벗어놓은 스타킹〉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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