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벼랑 위의 사랑 / 차창룡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12. 9. 09:10
728x90


                                                 

 


 

 

벼랑 위의 사랑


차창룡

 


모든 사랑은 벼랑 위에서 시작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벼랑은 내 마음의 거주지. 금방 날아오를 것 같은 부화 직전의 알처럼
벼랑은 위태롭고 아름다워, 야윈 상록수 가지 붙잡고
날아올라라 나의 마음이여, 너의 부푼 가슴에 날개 있으니,


일촉즉발의 사랑이어라, 세상은 온통 양귀비의 향기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신과 나는 벼랑에서 떨어졌고,
세상을 우리를 받쳐 주지 않았다. 피가 튀는 사랑이여,
계곡은 태양이 끓는 용광로, 사랑은 그래도 녹지 않았구나.


버릇처럼 벼랑 위로 돌아왔지만, 벼랑이란 보이지 않게 무너지는 법,
평생 벼랑에서 살 수는 없어, 당신은 내 마음을 떠나고 있었다.
떠나는 이의 힘은 붙잡을수록 세는 법인지.


모든 사랑은 벼랑 위에서 끝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내 마음은 항상 낭떠러지였다. 어차피 죽을 용기도 없는 것들아,
벼랑은 암시랑토 않다는 표정으로 다투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시집『벼랑 위의 사랑』(민음사, 2010)

 

 


  강형철 시인의 쓴 꿈꾸는 듯한 달콤한 사랑을 기대하는 소박한 시 '야트막한 사랑'을 읽다가 차창룡 시인의 벼랑 위의 사랑을 읽는다. 첫 구절부터 위태위태하다. 모든 사랑이 벼랑 위에서 시작이 된다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처음부터 불쏘시개처럼 격정적인 사랑은 오래 못 간다고 한다. 헤어지기 위해 시작하는 사랑은 없지만 이 시는 처음부터 헤어짐을 내포하고 있다. 구질구질하게 세속적인 것을 따지는 것도 그렇다. 누구의 잘잘못도 아니다. 마음은 인연 따라 왔다가 흐르는 물처럼 아무 것도 싣지 않고 가는 것이다. 


  벼랑 위의 사랑, 세속 남녀의 사랑을 두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보듬고 안아주는 평범한 사랑을 하는 선남선녀에겐 지고지순한 사랑은 없다. 사랑은 두 사람의 마음이 한데 고여있을 때만 가능한 것. 한 사람의 마음이 떠나는 순간 사랑은 끝나는 것이다. 가여운 인간의 사랑을 두고 신의 경지로 끌어올리려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잃었다고 해서 너무 슬퍼할 것도 분노할 것도 없다. 사랑은 고여있는 샘물이 아니라 흘러가는 물인 것이다. 고유명사가 아니라 자동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 박철  (0) 2014.12.09
야트막한 사랑 / 강형철  (0) 2014.12.09
약속 / 천상병  (0) 2014.11.01
더딘 사랑 / 이정록  (0) 2014.11.01
가죽나무 / 도종환  (0) 2014.09.29